그의 답장을 받았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by 선량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했지만, 진짜 답장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날마다 메일함을 열어보긴 했다.

그렇다면 난, 그의 답장을 간절하게 기다린 건가??


그의 답장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리고 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런 메일을 받아보긴 생전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답장을요.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이렇게 다시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이시라고요?

사실, 제 꿈도 작가인데,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돈을 벌어야 해서 이런 일을 하긴 하는데, 진짜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돈이 필요해서 부업으로 하는 거죠.

제 꿈이 작가였어요.


사실, 브런치 작가에도 3번이나 신청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런데 님은 제가 원하는 걸 다 이루셨네요?

어떻게 하면 님처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아, 그리고 제가 님의 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업무상 비밀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꼭 알려 주세요.




갑자기 멍해졌다.


지금의 내 삶이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글만 쓸 수 있다면, 브런치 작가만 된다면, 구독자가 천명만 넘는다면, 책 한권만 출간할 수 있다면, 독립 출간을 해 볼 수만 있다면, 출간 강의를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몇 년 전에 꿈꾸었던 일들이다.

그리고 느리긴 하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이루었다.

이 일들을 다 이루었지만, 여전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눈을 돌린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갈증이 더 심해지는 이유가 뭘까?


높은 곳엔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보다.

아직 그만큼 올라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다니.... 너무 서둘러서 급하게 올라간 게 분명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쉬어보자.

내 이마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을 느껴보자.

바람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잘하고 있어. 날마다 글을 쓰고 있는 게 어디야. 포기하지 않고 걷는 게 어디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바람을 느끼며 가는 거야. 그래야 주위를 더 잘 볼 수 있는 거야.”




분명한 건 그의 답장으로 내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와우!

이 사람 비*** 약 못 팔겠네.

메일 하나로 자존감을 올려놓았으니.




그가 내 답장을 기다릴까? 아마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며칠 있다 써야겠다.

이럴 땐 적당한 밀당이 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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