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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6. 2020

우리집 고양이 한 마리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어찌나 내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음을 날리던지. 강아지 같았다니까. 저리 가라고 손을 저어도 가질 않더라니까.

어쩌겠어?

자꾸만 따라다니며 한 번만 봐 달라고 애원하는데, 모른척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한 번은 쉬는 토요일에 같이 동물원에 가자는 거야. 엄청 더운 날이었어.

남들 보는 눈도 있고, 괜히 안 좋은 말이 돌까 봐 걱정도 됐지만, 똘똘한 강아지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데, 안 간다고 할 수가 없더라니까.

그래서 그냥 간다고 했지.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도 너무 더웠던지 다들 자고 있었어. 볼 것도 별로 없었어. 그냥 덥고 싱거운 날이었지.

그런데 걔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온 거야.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자면서.

고민이 됐지. 오냐 좋다, 하고 사진을 찍어주면 걔가 괜히 오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 혼자 김칫국 마시는 걸 수도 있는데, 느낌이 좀 그랬어.


걔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하더라. 찍기 싫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같이 벤치에 앉아서 찍었지 뭐.


말도 마. 그 뒤로도 누구네 놀러 가자. 같이 어디 가자. 저녁 먹자. 얼마나 강아지처럼 총총거리며 살랑거렸게. 난 진짜 강아지인 줄 알았지 뭐야.

 


 

몇 년 전에 내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거든. 집 없는 새끼 고양이었어. 얼마나 귀엽던지, 덜컥 입양을 했지 뭐야.  

그런데 소파에 앉아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거야. 내가 왔다 갔다 해도 꼼짝도 안 해. 배가 고플 때만 나한테 와서는 “야옹” 한마디 하더라.

내가 심심해서 “야옹아~” 부르면 한번 쳐다보고 말아.

웃긴 건 한 번씩 나한테 다가와서 다리를 비비는 거야. 도도한 녀석이 눈길 한번 안 주다가 한 번씩 애교를 부리면 또 얼마나 귀엽게?


결국, 우리 집 양반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기침을 하도 하길래 다른 집에 보내야 했어. 어찌나 아쉽고 미안하던지.... 두 달 만에 정이 듬뿍 들어버린 거야.



그런데 지금 우리 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소파에 누우면 일어날 생각을 안 해. 내가 그 앞을 왔다 갔다 해도 한번 쳐다보고 마는 거야.


내가 세 번은 불러야 대답하고, 조용히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자기가 필요한 게 있으면 몸을 일으키지.

꼴도 보기 싫다가도 한 번씩 무심한 듯 툭툭 던져주는 선물을 받다 보면, 또 사랑스럽기 그지없지.




이놈의 영감탱이,

강아진 줄 알았더니 완전 고양이야.

 

다른 집에 보낼 수도 없고, 그냥 데리고 살아야지 뭐.

10년 살았더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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