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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24. 2020

눈물이 선이 되어 흐르다

선을 긋다, 마음을 잇다.

유난히도 기억에 오래 남는 날이 있다. 3년 전의 그날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평범하기만 했던 그날이 선 하나로 특별한 날이 되어버렸다.  


이른 저녁을 먹고 다 함께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밖에선 비가 오고 있었다. 3월이었지만, 방글라데시는 이미 여름이 시작된 후였다. 습하고 더운 공기를 식히려 에어컨을 틀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남편과 말다툼을 했고, 화가 난 나는 언성을 높였다. 씩씩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혼자 방 안에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왜 저 인간과 결혼을 했을까? 내가 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내가 어쩌다 이런 삶을 택했을까?

답을 구할 수도 없는 물음표를 내던지며 서럽게 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물이 나면 애써 참지 않는다. 질질 질 울어버린다. 내가 나약하거나, 병들었거나, 눈물 하나 참지 못해서 우는 게 아니다. 울고 나면 울분으로 뜨겁게 달궈진 가슴을 한소끔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어디선가 봤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반복된 패턴을 그린 그림이었다. 종이와 펜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선을 긋기 시작했다. 젠탱글이 뭔지, 그림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선을 긋고 그림을 그렸다. 무엇 때문에 슬펐는지, 왜 울었는지 까맣게 잊고 말았다.

내가 던진 물음표들이 느낌표가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선을 긋기 시작했다.


처음 그린 펜그림




생전 처음으로 스케치북을 샀다. 스케치북의 사이즈와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림을 그리는 연필은 4B 연필만 있는 줄 알았는데, 2B,4B, 6B, HB….. 펜도 굵기에 따라, 용도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했다.


존재도 모르던 사람에게 갑자기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진다. 이건 꼭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관심도 없던 그림에 어느 날 갑자기 관심이 생겨버렸고, 더 알고 싶어 졌다.


유튜브를 보며 그림을 따라 그렸다. 더 다양한 패턴들을 그려보았다. 점과 점을 잇고, 선과 선을 그으며 텅 비어있던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채워나갔다.


싹이 자라 꽃이 되기 위해서는 따뜻한 햇빛과 물이 필요하듯,

마음속 싹이  자라기 위해 따뜻한 행복과 적당한 눈물이 필요했었나 보다.

눈물은 참는 것이 아니라 흘리는 것. @goodnesslamb

그날, 눈물을 참지 않고 흘려보내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만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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