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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03. 2020

선을 밟았다. _ 크리에이터라고 해도 될까?

선을 긋다, 마음을 잇다.


삶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그건 사회가 그어놓은 것일 수도 있고, 나 스스로가 그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선을 뛰어넘는 사람은 개천에서 용 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하고, 힘든 환경을 이겨낸 위인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강열하게 느꼈던 선은 바로 “언어”라는 선이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한국말을 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 처음 갔을 때, 영어도 못하고 현지어도 못하는 한국 사람인 나는 그냥 바보였다.



처음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갔을 때,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새댁이었다. 아이는 겨우 10개월이었고 남편은 아침 일찍 회사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홀로 집안에서 지내며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붙들고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2층 베란다 창문 너머로 니어카에 화분을 잔뜩 팔고 있는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장미와 해바라기, 이름 모를 하얀 꽃까지. 외롭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아저씨에게 손짓을 했다. 손짓 발짓으로 말을 했더니, 화분 3개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아저씨는 바로 가지 않고 뭐라 뭐라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저씨는 쏜살같이 사라지더니 흙을 담은 포대를 하나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우리 집 현관에 앉아서 화분을 하나하나 심어주는 것이 아닌가?

난 아저씨가 참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무슬림이라 무서운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심어주기까지 하다니….

일을 모두 끝낸 아저씨는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멍하니 아저씨를 바라보니, 투 사우전드라고 했다. 결국, 2천따카를 지불해야 했다. 그건 화분 값의 10배였다.


그 후, 벵골어 책을 끼고 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면 책을 꺼내 단어를 외우고, 문법 공부를 하고, 현지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했다.

몇 년 후, 나는 벵골어를 꽤 잘하는 한국사람이 되었다.



한번 선을 넘어 본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취감으로 내면 깊숙이 남아있다가 한 번씩 되살아나곤 한다. 영어 공부를 할 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도 벵골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성취감은 다른 경험들의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그림을 날마다 그리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일들이 몇 가지 있다. 마플 샵에 나만의 온라인 샵을 하나 만들었고(비록 잘 팔리진 않지만),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나만의 공간을 만든 일, 그리고 인스타 그램에 매일 그림을 올리는 일이었다.  

언어를 공부할 때 현지인들과 직접 대화해보면서 실제 어휘를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되듯이 공개적으로 그림을 올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를 잘해도 그 나라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아무리 그림을 열심히 그려도 아티스트라는 아이덴티티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냥 그림은 나에게 취미생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심한 마음을 바꿔 크리에이터라는 직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유는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내 그림을 출품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없어서,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좀 창피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 번씩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가 그어놓은 선을 한번 밟아보기로 한 것이다.


미국 사람이 한국말을 좀 하면 엄청 잘하게 느껴지듯이, 한국 사람이 벵골어를 말하면 엄청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다. 내 벵골어 실력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꼭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냥 눈치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기에 욕먹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선을 한번 밟아봤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공모전에 합격하진 않았지만, 이 그림으로 그라폴리오 “발견” 코너에 선정되었다.

이 경험은 미래의 내가 하게 될 어느 경험의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을 믿는다.



혹시 지금, 주저하는 일이 있다면, 한번  선을 지긋이 밟아보는  어떨까? 

지금의 경험이 미래의 당신을 이끌어 줄지도 모른다. 



** 그라폴리오는 네이버의 웹서비스 중 하나로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멋진 작품을 발견, 공유하고 사고팔 수 있는 창작 콘텐츠 커뮤니티이다. 그라폴리오에는 데뷔, 발견, 주목받는 세 가지 코너가 있다.

1. 데뷔 : 신인 크리에이터들을 소개하는 코너

2. 발견 : 호응이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코너

3. 주목받는 : 팔로워 100명 이상을 보유한 크리에이터의 작품을 소개하는 코너**



선량의 그라폴리오 구경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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