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Oct 06. 2020

에필로그 _ 그림을 못 그려서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선을 긋다, 마음을 잇다.

2018년 여름, 내가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이다. 글쓰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연필을 들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이 없어서 낮에는 펜으로 노트에 빼곡히 글을 썼고,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밤마다 남편의 노트북에 도둑고양이처럼 옮겨 적었다. 그러기를 6개월, 새 노트북을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6개월 동안 힘겹게 글을 쓰던 나는 노트북을 만난 후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원고를 쓰고, 브런치 글을 쓰고, 쓰고 쓰고 또 썼다. 하루 종일 무슨 글을 쓸지 생각을 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을 글로 옮기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그곳은 살면서 내가 가장 외로웠던 곳, 바로 뭄바이였다. 하지만 글을 쓰느라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케치북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던 내가 얼마 전에 태블릿을 장만하게 되었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릴 줄만 알았지, 디지털로 그리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더욱이 포토샵도 모르고, 레이아웃의 개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해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그리는 방법을 공부했다. 여러 개의 그림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하나하나 사용해보았다. 그중엔 너무 어려운 것도 있었고, 그림 전문가들이 사용할 법한 어플도 있었다. 아무런 개념이 없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그림 그리기 어플을 찾아야 했다.

드디어 어렵지 않은 어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날마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날마다 노트북으로 글을 썼던 것처럼.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 요즘은 하루 일과가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 수업 전에 아침밥을 준비해 먹여야 하고, 9시 정각에 온라인 클래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세팅을 해야 한다. 두 아이의 수업 시간은 매번 다르고, 그때마다 책이나 노트, 과제를 준비해 주어야 한다. 수업이 끝나면 과제를 확인하고 그날의 숙제를 끝내야 한다.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에 직접 가서 과제를 제출하고 선생님의 코멘트를 받는다. 아이들의 수업 중간중간 집안일도 해야 하고, 글쓰기 강의 준비도 하고 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나는 짬짬이 태블릿을 꺼내 그림을 그린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어떤 그림을 그릴지 사진을 찾고, 아침 준비를 하기 전까지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이 수업하는 중에는 바로 옆에 앉아서 아이들의 시중을 들며 그림을 그린다. 집안일을 하는 중간에, 아이들 과제를 도와주면서, 모든 집안일과 과제를 끝낸 저녁 무렵에 나는 그림을 그린다. 너무나 바빠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이제 내가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되었고,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된 후, 가장 좋은 것은 그림 하나로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을 하니, 열 마디 말보다 더 낫고, 인스타 친구들의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니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사이가 아닌, 좀 더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림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림으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통로가 또 있을까?

코로나로 한국에 갈 수도, 여행을 갈 수도 없는 요즘, 집구석에 앉아서 가만히 그림을 그린다. 어떤 날은 그리운 한국을, 어떤 날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유럽의 멋진 거리를, 또 어떤 날은 익숙한 듯한 골목길을, 인도의 모습을 그린다. 손끝에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몰입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몰입의 시간을 갖고 나면 힘들었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외로웠던 감정은 어느새 녹아내린다.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언젠가 내가 그린 그림들로 작은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다. 그 꿈을 위해 큰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샀다. 아직 한 장도 그리지 못했지만, 10년 뒤엔 저 스케치북에 그림들이 빼곡히 그러져 있기를. 태블릿에는 그림들이 가득 저장되어 있기를.

나는 그림을 못 그리기에, 그림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모르기에 오늘도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해가 지기 전에 하ᄂᆯ은 가장 밝고,
가 뜨기 전에 하늘은 가장 어둡다
나의 해ᄂ 지금 하늘 ᅥ디즈음에 운행하고 있는가?
어둠이 와도 다시 밝음이 오고
해가 져도 다시 떠오르니,
지금 나의 해가 밝다고 자만하지 않고,

어둡다고 속상 하지 않기를.


-글/그림 : 선량 -


작가의 이전글 선을 밟았다. _ 크리에이터라고 해도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