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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4. 2020

분홍색을 버리다

글로모인사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고 있던 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 나 왜 온통 분홍색 옷만 입고 있어? 좀 심한데? 머리는 왜 이래? 읔, 창피해~”

8살 딸아이가 2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다.

“왜? 예쁘기만 한데. 네가 분홍색을 좋아했잖아. 머리도 네가 꼭 이렇게 양 갈래로 땋아달라고 했잖아. 지금 해줄까?”

“아니, 아니. 절대 싫어.”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분홍색 치마와 레이스,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를 좋아하던 딸아이는 어느새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아이의 반응이 못내 아쉬웠다.

부스스 흩날리던 머리를 곱게 곱게 빗질을 해서 숱도 많지 않은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나누고, 또 세 겹으로 나눠 쫑쫑 땋아주면 아이는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처럼 머리를 흔들며 콩콩콩 뛰어다녔다.

레이스가 가득 달린 분홍색 치마를 입고 분홍색 샌들을 신고 분홍색 가방을 메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든 아이가 꽃처럼 손을 흔들며, “엄마 안녕. 이따 만나.” 하며 내 얼굴에 볼을 비볐다.


멋에 대한 기준이 바뀐 순간,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이가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잘 잡아라, 에헤야 디아. 줄 넘겨라, 에헤야 디아. 모심어라, 에헤야 디아.”

다 함께 모를 심을 때 힘겨움을 잊고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주문처럼 외웠던 노래를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부르곤 했다.

“빨리 커라, 에헤야 디아. 빨리 커라, 에헤야 디아.  빨리 좀 커라, 에헤야 디아~”


목청 높여 모심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모내기기 끝나고 새참 먹을 시간이 되었던 것처럼,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원한 느낌보다는 허전한 마음이 크다. 그렇게 바라고 바랐건만, 아이들이 성큼 자란 증거를 대면하자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이는 더 오래 전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동영상 속의 아이는 뒤뚱뒤뚱 걸으며 “엄마, 으누 따뚱 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남발하고 있었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 왜 울어?”

나도 알 수 없었다.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그리운 것인지, 회한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격인지.




두 아이를 방글라데시에서 키웠다. 첫째 아이는 10개월에, 둘째 아이는 90일에 방글라데시로 데리고 왔다.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을 함께 부둥켜 앉고 지냈다.

아이들과 엄마 사이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애정과 더불어 우리에겐 동지애가 더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뭄바이에서 그리고 이곳 뉴델리에서 우리는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시간이 언제나 지속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분홍색이 창피하다고 말한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 자기만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언젠간 내 품을 떠나 훨훨 날아가겠지.



아이가 자란 만큼, 나도 자랐을까? 나는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써 놓은 글을 잠시 들춰보았다. 여기저기 힘이 잔뜩 들어가고 멋을 부린 문장들이 한가득 보였다. 아이가 옷장 속에서 분홍색 옷을 찾아내 치워버렸듯이, 나 역시 비문과 오문을 찾아 삭제했다.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나도 그리고 내 글도 함께 자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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