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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3. 2020

바람이 머물다 간 그곳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코끝이 시린 바람이 담장에 머물면

아빠의 손에 곱게곱게 길러진 유자의 가시는 

 날카로워졌다


샛노랗게 유혹하는 열매를 따려 

아이는 두 손을 뻗었다


열매를 얻기 위한 발돋움에 

나무는  날을 새웠다

기어코 아이의 손등에 상처를 입혔다


노란 열매 아래 시린 바람이 머물면 

이제   집안에 시큼한 향내가 가득하리란  

아이는 알았다


 바람 불기 시작하면 

아이의 코끗엔 유자향이 풍겼고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그건 고향의 바람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생생히 떠오르는 

가시 돋친 나무는

그때는 상처였고 

지금은 그리움이 되었다 


고향집 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오랜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빠, 유자 많이 열렸어요?”

아니, 별로다.” 

엥?  고생을 했는데, 많이 안 열렸어요?”

그러게 말이다. 내년에 다시 봐야지.” 


몇십 년을 몸 바쳐 유자를 키우고 계시는 아빠는 아직도 유자와 애증의 관계이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아빠의 유자차가 너무 마시고 싶다. 

아빠의 유자에는 아빠의 사랑과 정성과 애정이 가득 담겨있어서 향과 맛이 남다르다. 

막내딸을 위해   남겨 두시기를..... 




@태블릿으로 그린 그림  by 선량 


# #에세이 #그림 #디지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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