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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9. 2020

실수하고 부딪히며 자라는 아이

글로 모인 사이



지난 월요일, 학교 끝나고 만난 아이는 말했다.

“엄마, 오늘 받아쓰기했는데, 거의 다 틀렸어.”

“헐, 다 틀렸어?”

“아니, 다 틀린 건 아니고, 거의 다……. 몇 개는 맞았어.”


화요일, 아이는 말했다.

“엄마, 오늘은 어제 보다는 더 맞은 것 같아. 거의 다는 아니야.”


수요일 저녁에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내일 다시 시험 보는데, 공부 좀 할까?”


금요일 오후에 아이가 일주일 동안 시험 본 노트를 가지고 왔다. 빨간 펜이 여기저기 표시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틀린 게 더 많아 보였고, 좋은 점수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웃고 말았다. 이것도 어디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왜 이것도 못하냐고, 왜 이런 걸 틀렸냐고 아이를 타박할 수 없었다. 



한국 친구가 아무도 없는 프랑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즐겁게 다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걱정이 되었다. 이러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한글도 다 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큰 아이는 3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다. 문법과 어휘가 잔뜩 들어간 긴 문장의 받아쓰기를 한다. 프랑스어는 인칭에 따라 동사가 변한다. 문제는 동사는 변했지만, 발음은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불규칙 동사가 많다는 것이었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이건 프랑스 사람들도 어려워한다고 했다. 결국 공부를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일이다.


금요일이면 다음 주에 공부할 단어가 제시된다. 주말에 스스로 공부를 한 후, 월요일에 시험을 보고, 화요일에 또 보고 목요일에 또 한 번 반복해서 시험을 본다. 같은 문장과 단어를 반복해서 보는 동안 아이들은 그 단어를 익히게 된다.

내 아이가 그 많은 어휘와 문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내가 전혀 모르니 아이의 결과를 봐도 할 말이 없다. 아이를 붙들고 공부를 시키지도 못한다. 그저 선생님의 손에 모두 맡기는 수밖에. 



나는 지금,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있는 것일까?


자유와 방임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을 지느냐와 지지 않느냐일 것이다. 정해진 규율 안에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것이 자유이고  그런 책임 따위 상관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방임이다. 내 아이는 지금, 자유와 방임 그 사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를 믿고 있다. 반복하며 배워가는 과정들이 저절로 아이에게 스며들 것을,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수하고 부딪히며 깨달아 가리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 집에는 한국으로 귀임한 사람들이 주고 간 중고 책들이 가득 있다. 그중에 20권짜리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이 있다. 코로나로 한국에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새로운 책을 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이와 나는 그 책을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새 책에 목말라하며 읽었다. 어느새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모두 외워버리게 되었다.


요즘 아이는 프랑스 문학으로 오디세이 이야기를 배운다. 책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아직 프랑스어 어휘가 부족한 아이는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뜻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 다 아는 내용의 책을 읽고 문제를 거뜬히 풀 수 있었다. 역시 모든 언어를 뛰어넘는 것은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가게 되면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한국에 사는 언니는 아이들이 저학년일 때 들어와서 학교에 적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고등학교까지 해외에서 다닌 후 대학에 보내라고 한다.

사실 아이의 교육 앞에서 부모는 작아지기 마련이다. 나도 아이들도 특별한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할 뿐이다.


이 선택의 결과가 무엇일지 모르겠다. 단지, 아이가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나는 그 옆에서 아이의 성장 과정을 열심히 써 나갈 것이다.


뉴델리 현실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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