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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4. 2019

인도에서 멘탈을 강하게 하는 방법

내가 이 구역 멘탈 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저녁 8시면 아이들은 책을 골라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나란히 누워서 아이들이 골라온 책을 하나씩 읽어준다. 세 권째 읽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전혀 알 수 없는 그 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였다.

"무슨 소리지?"

방문을 열어보니, 천장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방 옆에 있는 욕실 위에 온수 보일러 쪽에서 비처럼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 이거 뭐야?"

"어머, 보일러가 터졌나 봐."

한 시간 전에 온수 보일러 스위치를 켜놓았었다. 그래서 쏟아지는 그 물이 매우 뜨거웠다.

"엉 엉, 엄마, 나 무서워."

둘째 소은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안아, 수건 가져와."

"응, 엄마. 수건 다 가져올까?"

"응, 빨리빨리."

그나마 지안이는 침착하게 행동을 했다. 물이 너무 뜨거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신발장 위에 있는 우산을 들고 와 펼쳤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보일러 스위치를 껐다. 그래도 물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보일러 쪽으로 물이 올라가는 밸브를 찾아야 하는데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물은 아이들 방으로, 거실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어떡하지? 지안아 일단 방으로 못 들어가게 수건으로 아줘."

"엉엉엉. 엄마 나 무서워."

"소은아, 넌 소파 위로 올라가 있어. 나랑 엄마가 할게."

9살이 된 지안이의 저 말이 너무 듬직하게 들렸다.


물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다행히 물의 온도가 미지근하게 바뀌어있었다.

"지안아 엄마 핸드폰으로 아빠한테 전화해."

난 흐르는 물을 쓰레받기로 퍼 내며 말했다. 지안이는 얼른 핸드폰을 찾아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집이 난리가 났어. 물바다가 됐어. 얼른 와."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남편은 지안이가 장난치며 연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얼른 내가 전화기를 집어 들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온수 보일러가 터져서 지금 집이 물바다야. 얼른 와. 집이 물바다가 됐다고."

"어, 알았어."

남편은 오랜만에 회식 중이었고, 회식하는 장소에서 집에 오려면 30분은 족히 걸린다. 물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지안아, 안 되겠다. 엄마가 경비 아저씨 데리고 올 테니까 잠깐만 있어. 얼른 갔다 올게."

"응, 엄마 빨리 와야 해."

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었다. 머리를 뒤로 한번 쓸어내리고 얼른 뛰어갔다. 경비실에 도착해 말을 해야 하는데, 머리가 새하얀 백지가 되었는지 무슨 말을 해야 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come, come, water problem in my house. water is all of my place."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내 말을 알아먹은 것인지, 물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 있는 내 모양새를 보고 눈치를 챈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저씨는 얼른 내 뒤를 따랐다.




며칠 전, 안방 화장실 보일러가 고장이 나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차가운 물로 씻기에는 좀 추웠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배관공을 보내다고 했다. 내일 온다던 배관공은 오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아이들 방 옆에 있는 욕실을 사용했다. 그 욕실은 평소에 온수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내가 빨래를 하거나 아이들 가방, 신발을 빨 때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그냥 차가운 물로 씻곤 했다.


배관공은 약속한 날보다 이틀이 지나서 왔다. 그리고 보일러를 보더니 고장이 났다고만 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언제 고칠 건데?"

"다음 주에 다시 올게."

"뭐라고? 다음 주? 그럼 너 연락처 좀 줘."

"안돼. 필요하면 집주인에게 말을 해."

"아니, 너 연락처를 줘."

"내 연락처는 줄 수 없어, 그리고 다음 주에 올게."

결국 그 배관공은 다음 주에 오겠다는 말만 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오겠다고 한 날, 그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물의 영역은 더 넓어져 있었다. 안방으로, 화장실로, 거실 소파 아래로 멀리멀리 확장되어 있었다. 경비아저씨도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얼른 욕실로 들어가 물이 들어오는 메인 밸브를 잠갔다. 30초 후, 쏟아지는 물이 점점 잦아들었다.

"no more water. call plumber tomorrow."

"okay, thank you."

경비아저씨가 돌아가고 물바다가 된 집에 셋이 서있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여름에 장맛비로 침수된 집에 사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럴까? 아니야, 그들보다는 내가 더 낫다. 가구는 물에 젖지 않았으니.......


양동이를 가져와 바닥에 있는 물을 퍼 담았다. 두 아이는 수건으로 물을 닦고 양동이에 짜는 일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일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건으로 물을 닦는 것인지, 물 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것인지.......



물바다가 된 집@sonya

양동이에 물을 담아 3번 정도 버렸을 때, 남편이 도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살다 살 희한한 경험을 다 해보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에휴, 간만에 집안 대청소 하겠내. 자기가 하도 청소를 안 해이런일이 일어났나?"

"내가 청소를 잘 안 하긴 안 했지. 집이 깨끗해지긴 하겠네."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고 다시 작업에 몰두 했다. 물을 퍼 나르고 수건으로 닦고, 짜고의 반복 이었다. 거실에 있던 소파와 전기장판, 테이블을 한곳에 쌓아두고 바닥을 닦았다. 구석에 있던 머리카락과 먼지들이 물과 함께 닦여나갔다. 10시가 넘어갔다.

"아휴, 더이상 못하겠다. 애들아 자자. 내일 하자."

대충 마무리를 해 놓고 거실에 선풍기와 제습기를 틀어 놓았다. 천장에 달려있는 선풍기가 너무 고마웠다.


다음날 11시까지 오겠다는 배관공은 오지 않았다. 집주인을 통해 물어보니 1시까지 오겠다고 했다. 다시 기다렸다. 1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었다. 다시 연락을 해보니, 아예 보일러를 새것으로 사서 교체를 하겠다고 한다.

교체하는 것은 좋다. 그래서 언제?????



인도에서는 항상 기다려야한다.

내일 오겠다고 하면 이틀 뒤에나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웬일로 제 시간에 오면 그저 고맙게 생각한다.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도 닥친 상황을 묵묵히 수습하면 된다. 스트레스 받으며 화만 내 봤자 내 정신건강에만 안좋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정신을 놓지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날마다 하고있는 몇가지의 습관 덕분이다.

1. 감사일기

매일 아침 감사일기 쓰기

1월1일부터  감사일기를 쓰고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감사일기 쓰기이다. 감사일기를 쓰다 보면 힘든 일 보다 감사한 일들이 훨씬 많음을 알게 된다.


2. 그림그리기

Taj mahal @sonya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고있다. 그림을 전혀 모르던 내가 날마다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이 날 회복시켜준다. 힘들었던 마음을 손끝으로 모아 그림을 그린다. 다 완성하고 나면 힘든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뿌듯함만 남는다. (배관공을 기다리며 그림을 하나 완성했다.)



3. 글쓰기

브런치를 시작하고 거의 매일 글을 쓰고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마음가짐은  블로그나 인스타에 글을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이 언젠가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쓰게된다. 그리고 날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정말 작가다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담겨있다.

 글을 쓰다보면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게 된다. 그리고 별거였던 일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날마다 하고 있는 이 세 가지는 이곳,  인도에서 외로움을 이기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는 큰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이 구역 멘탈 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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