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Dec 18. 2020

뉴델리의 겨울

글로모인사이


새벽부터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요란하다. 한국에선 이미 시작된 분주한 오전이 뉴델리로 넘어오려면 3시간 30분 남았다.

좀 더 자려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누웠는데, 진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 울린다. 무슨 일이 있나? 고이 자는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켰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쌓였어요.

“첫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어요.”

“눈 쌓인 거리를 보니 정말 예쁘네요.”


여러 개의 카톡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다양한 지역의 눈 내리는 동영상부터 아이들이 눈밭을 뛰어다니는 사진까지. 하얀 눈을 보고 겨울이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국에 살 때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는 옷과 신발을 준비해야 했다. 지난해에 샀던 겨울옷은 왜 이번 겨울엔 어울리지 않는지. 지난여름에 샀던 옷은 왜 이번 여름엔 입을 수가 없는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계절엔 민감해야 했다.

 

이곳은 다르다. 일 년 중 10개월이 덥고, 2개월이 춥다. 그사이에 봄과 가을이 있긴 하지만, 눈치챌 때즈음이면 이미 지나가고 없다.

이번 가을도 그랬다. 좀 서늘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겨울이 되었다.


겨울이 되었다고 해서 한국처럼 추운 건 또 아니다.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털모자와 장갑, 패딩 잠바가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전기장판과 히터는 필요하다. 해가 뜨면 따뜻하고, 해가 지면 추워지는 기온때 문이기도 하고, 바닥이 대리석이라서 밤이 되면 한국만큼 추워진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반 팔 티셔츠, 긴 팔 티셔츠, 잠바를 순서대로 껴입고 학교에 간다. 정오가 되면  잠바와 긴 팔 티셔츠를  벗고 반팔 차림이다.  날마다 빨랫감이 잔뜩 쌓인다.


인도의 단순한 계절은 사람의 마음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옷을 미리 준비하지도 않고, 계절에 따라 새로 사지도 않는다. 작년에 입었던 옷을 또 입고, 작아지면 다른 가정에 나눔한다. 그리고 다른 가정에서 나눔 해준 옷을 내 아이에게 입힌다.

옷이 조금 해지고 구멍이 나 있어도 상관없다. 여기선 유행 같은 게 없으니까.

 


이번 주부터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오랜만에 장롱을 뒤져 겨울옷을 꺼냈다.

무심코 손에 든 옷을 보니, 10년 전에 샀던 옷이다. 어떤 옷은 15년 된 것도 있다. 이 옷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20대에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있는 내가 조금 웃겨 피식 웃었다.

 

 


눈을 못 본 지 5년이 넘었다. 딸아이는 겨우 두 살 때 눈을 봤으니,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아들아이는 다섯 살 때 사촌들과 함께 눈밭을 뛰어다니던 한 줌의 기억을 떠올린다.


카톡으로 전송 된 새하얀 눈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아무 느낌이 없었다.  눈을 좋아했던 나는 사라지고, 가족의 감기를 걱정하며 꿀물을 준비하는 엄마만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 편집자는 아니지만, 책을 만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