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의 겨울

글로모인사이

by 선량


새벽부터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요란하다. 한국에선 이미 시작된 분주한 오전이 뉴델리로 넘어오려면 3시간 30분 남았다.

좀 더 자려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누웠는데, 진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 울린다. 무슨 일이 있나? 고이 자는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켰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쌓였어요.

“첫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어요.”

“눈 쌓인 거리를 보니 정말 예쁘네요.”


여러 개의 카톡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다양한 지역의 눈 내리는 동영상부터 아이들이 눈밭을 뛰어다니는 사진까지. 하얀 눈을 보고 겨울이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국에 살 때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는 옷과 신발을 준비해야 했다. 지난해에 샀던 겨울옷은 왜 이번 겨울엔 어울리지 않는지. 지난여름에 샀던 옷은 왜 이번 여름엔 입을 수가 없는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계절엔 민감해야 했다.

이곳은 다르다. 일 년 중 10개월이 덥고, 2개월이 춥다. 그사이에 봄과 가을이 있긴 하지만, 눈치챌 때즈음이면 이미 지나가고 없다.

이번 가을도 그랬다. 좀 서늘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겨울이 되었다.


겨울이 되었다고 해서 한국처럼 추운 건 또 아니다.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털모자와 장갑, 패딩 잠바가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전기장판과 히터는 필요하다. 해가 뜨면 따뜻하고, 해가 지면 추워지는 기온때 문이기도 하고, 바닥이 대리석이라서 밤이 되면 한국만큼 추워진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반 팔 티셔츠, 긴 팔 티셔츠, 잠바를 순서대로 껴입고 학교에 간다. 정오가 되면 잠바와 긴 팔 티셔츠를 벗고 반팔 차림이다. 날마다 빨랫감이 잔뜩 쌓인다.


인도의 단순한 계절은 사람의 마음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옷을 미리 준비하지도 않고, 계절에 따라 새로 사지도 않는다. 작년에 입었던 옷을 또 입고, 작아지면 다른 가정에 나눔한다. 그리고 다른 가정에서 나눔 해준 옷을 내 아이에게 입힌다.

옷이 조금 해지고 구멍이 나 있어도 상관없다. 여기선 유행 같은 게 없으니까.


이번 주부터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오랜만에 장롱을 뒤져 겨울옷을 꺼냈다.

무심코 손에 든 옷을 보니, 10년 전에 샀던 옷이다. 어떤 옷은 15년 된 것도 있다. 이 옷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20대에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있는 내가 조금 웃겨 피식 웃었다.


눈을 못 본 지 5년이 넘었다. 딸아이는 겨우 두 살 때 눈을 봤으니,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아들아이는 다섯 살 때 사촌들과 함께 눈밭을 뛰어다니던 한 줌의 기억을 떠올린다.


카톡으로 전송 된 새하얀 눈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아무 느낌이 없었다. 눈을 좋아했던 나는 사라지고, 가족의 감기를 걱정하며 꿀물을 준비하는 엄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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