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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5. 2021

5. 저절로 자라나는 행복, 민들레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큰아이가 다섯 , 둘째가    시골 친정집에서  개월 정도 지냈다.



열세 살에 부모님 품을 떠나 살다가 방학이나 휴가 때만 가끔 들러 지냈었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과 몇 달을 지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남편은 서울, 본사 근처 원룸에서 지냈다.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우릴 보러 내려왔다. 몇 달 후 다시 방글라데시로 갈 계획이었기에 서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참고 견뎠다.



어른들과 다르게 두 아이는 시골의 모든 것을 만끽했다. 할머니 밭에서 땅을 파다 겨울잠에서 아직 덜 깬 개구리를 잡기도 하고, 할아버지 논두렁에 사는 도롱뇽을 잡기도 했다. 큰아이는 잠시 읍내에 있는 시골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고, 둘째 아이는 온종일 뽀로로 책을 읽으며 지내기도 했다.


 친정집 앞마당엔 엄마가 심어놓은 분홍 꽃과 함께,심지 않았지만 알아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

엄마는 민들레를  때마다 뽑아내 잡초와 함께 버렸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날아온 민들레 홀씨는 담벼락 좁은 틈에,

돌멩이 사이에,

손길이 닿지 않는 마당 가장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다.


제 알아서 햇볕을 모으고, 제 알아서 물을  모아 초록 이파리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길쭉하게 키를 세워 줄기를 뻗어 샛노란 꽃잎을 한 올 한 올 드리웠다.

그 옆으로 솜털처럼 까스라한  민들레 홀씨가 보송이 피었다.  






1998 수능시험을 끝낸 , 친구와 함께 찾아간 컴퓨터 학원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이란  접했다. 지금은 사라진 네띠앙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어떤 아이디를 쓸까, 한참 고민했다.

친구는 별생각 없이 자신의 생일과 이름을 조합해서 아이디를 만들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의미 있는 아이디를 만들고 싶었다.




내 이름 “선량”이는 다음엔 꼭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지어진 이름이다. 내 이름이지만 나를 위한 이름이 아니라 동생을 위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이름이 참 싫었다.


민들레가 떠올랐다. 민들레를 유독 좋아한 이유는 그 꽃이 꼭 나 같았기 때문이었다. 뽑고 뽑아도 다시 살아나는 꽃, 가벼운 바람에도 훨훨 날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꽃. 화려하진 않지만, 강인한 꽃.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처음 만든 나의 정체성은 “dandelion”이었다.





 다섯 살이었던 딸아이는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나는 행복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했다.

기어이 홀씨를 꺾어 한 손에 들고 후~ 불어 홀씨가 제 길로 가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민들레 꽃을 볼 때마다 아이의 어린 모습이 함께 보인다. 아이의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뒤

에 연로한 부모님이 있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8개월이 힘겨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행복이었고 감사였다.



행복이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피어나는 민들레일까?

그 행복의 조각을 지나치지 않고 멈추어 서서,  후~ 불어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일까?

내 아이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될수록 행복의 기준이 점점 높아지는 건, 우리 어른들의 잘못인지도.








지금은 사라져 버린 네띠앙과 함께   번째 인터넷 아이디 사라졌다.

두 번째로 만든 내 인터넷 세상의 주소는 다음이었고, 아이디는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onyouhe라고 지었다.


나는 지금  이름처럼 온유한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그렇게 싫었던  진짜 이름 "선량"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것에도 저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느라 바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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