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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5. 2021

1. 하나, 눈물

마흔, 둘의 단어


점심 준비를 하려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를 뒤졌다. 당근, 감자, 고구마, 토마토, 양파, 닭가슴살.

무엇을 만들지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꺼내 놓은 재료를 휘리릭 스캔하면 무얼 만들 수 있을지 짐작한다. 이건 서른둘에 엄마가 된 후 십 년 동안 식사 준비를 하며 단련된 생각의 근육과도 같다.


특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남아 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건 천지 차이다.

신년 계획을 세우고 한 해를 시작하는 것과 어제와 똑같은 하루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 같달까.

난 어처구니없게도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아도 하루는 꽉 차게 흘러가고, 요리는 결국 완성된다는 것이다.


수제비를 할까, 카레를 만들까 고민하다 조금이라도 덜 고달픈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수제비를 만들려면 밀가루 반죽을 해야 하고, 육수도 만들어야 하니까.

먹을 땐 사소하게 소화하는 음식이지만, 그걸 만드는 과정은 조금 더 분주하거나 조금 덜 고달프다.



카레, 수제비, 볶음밥, 칼국수에 들어가는 채소는 모두 같다. 하지만 채소를 써는 모양새는 매번 다르다. 깍둑 썰거나, 길게 채 썰거나, 아주 작게 다지거나.


채소를 썰 때마다 나는 매번 울고 만다. 조금이라도 덜 울기 위해 양파를 따뜻한 물에 담가도 보고, 양초를 켜 놓아도 보고, 물안경도 써 봤지만 소용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순서이다. 양파를 맨 나중에 썰어 냄비에 빠르게 넣음으로써 우는 시간을 단축한다.


어느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셰프의 말에 의하면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아서 양파 기름을 만든 후 나머지 채소를 넣고 볶아야 맛있다고 하던데, 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난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요리를 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때는 이십 대 초반,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였다. 겨우 일 년 만나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돌아섰지만, 그 미련이 촘촘히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사랑하면 이것저것 잘 주는 편이다. 옷이나 신발은 물론이거니와 카메라도 사주고, 가방도 사주었다. 그건 내 진심의 표현이었다. 심지어 헤어지면서 커플링을 그에게 주고 돌아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깝기만 한데, 그때의 마음은 애절하면서 단호했다. 그는 그 반지를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지만 팔았겠지, 짐작하며 남아있던 궁금증을 씻어낸다.


이십 대의 나는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위가 많이 창피했고, 내가 너무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고, 새어 나오는 슬픔을 꾹꾹 눌렀다.  



다시는 사랑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왠 걸,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 선물을 퍼주면서 내 진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가끔 내 아이들에게도 이유 없이 선물을 사준다.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기념일 말고, 아무 관련도 없는 그런 날 인형을 사주거나, 장난감을 사주거나, 목걸이 같은 사소한 것을 선물한다.

그건 내 만족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은 물질적 마음이랄까?



어제는 양파를 썰지도 않았는데 울고 말았다.

요 며칠 컨디션이 안 좋더니 배와 허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날은 춥고, 배는 아팠지만, 점심도 라면으로 대충 때웠기에 저녁 준비는 해야 했다.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다. 너무 아파서도 아니었고, 눈이 매워서도 아니었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는 짜증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난 꽤 건강한 체질이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살았기에 운동 신경도 좋았다. 딱히 아픈 곳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명함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먹는 걸 신경 쓰지 않으면 배가 아프고, 조금만 앉아서 일하면 허리가 아프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편두통이 있어 약을 먹는다.

마흔 하나에서 둘로 넘어오니, 몸의 노화는 나이만큼 플러스 1이 아니라 플러스 10이 된 듯하다.



이제 더 이상 이십 대가 아니기에 몸의 체력은 저질이 되었지만, 감정만큼은 더 단단해졌다.

눈물을 애써 참지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도 않는다.

눈물이 나면 줄줄 흘리다 옷깃으로 쓰윽 닦는다.

내 옷소매에는 양파를 썰다 흘린 눈물과 감정의 기복으로 흘린 눈물과 남편과 싸우다 흘린 눈물이 묻어있다.


난 이 눈물을 짜디짠 중년의 고뇌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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