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 눈물

마흔, 둘의 단어

by 선량


점심 준비를 하려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를 뒤졌다. 당근, 감자, 고구마, 토마토, 양파, 닭가슴살.

무엇을 만들지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꺼내 놓은 재료를 휘리릭 스캔하면 무얼 만들 수 있을지 짐작한다. 이건 서른둘에 엄마가 된 후 십 년 동안 식사 준비를 하며 단련된 생각의 근육과도 같다.


특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남아 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건 천지 차이다.

신년 계획을 세우고 한 해를 시작하는 것과 어제와 똑같은 하루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 같달까.

난 어처구니없게도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아도 하루는 꽉 차게 흘러가고, 요리는 결국 완성된다는 것이다.


수제비를 할까, 카레를 만들까 고민하다 조금이라도 덜 고달픈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수제비를 만들려면 밀가루 반죽을 해야 하고, 육수도 만들어야 하니까.

먹을 땐 사소하게 소화하는 음식이지만, 그걸 만드는 과정은 조금 더 분주하거나 조금 덜 고달프다.



카레, 수제비, 볶음밥, 칼국수에 들어가는 채소는 모두 같다. 하지만 채소를 써는 모양새는 매번 다르다. 깍둑 썰거나, 길게 채 썰거나, 아주 작게 다지거나.


채소를 썰 때마다 나는 매번 울고 만다. 조금이라도 덜 울기 위해 양파를 따뜻한 물에 담가도 보고, 양초를 켜 놓아도 보고, 물안경도 써 봤지만 소용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순서이다. 양파를 맨 나중에 썰어 냄비에 빠르게 넣음으로써 우는 시간을 단축한다.


어느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셰프의 말에 의하면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아서 양파 기름을 만든 후 나머지 채소를 넣고 볶아야 맛있다고 하던데, 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난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요리를 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때는 이십 대 초반,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였다. 겨우 일 년 만나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돌아섰지만, 그 미련이 촘촘히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사랑하면 이것저것 잘 주는 편이다. 옷이나 신발은 물론이거니와 카메라도 사주고, 가방도 사주었다. 그건 내 진심의 표현이었다. 심지어 헤어지면서 커플링을 그에게 주고 돌아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깝기만 한데, 그때의 마음은 애절하면서 단호했다. 그는 그 반지를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지만 팔았겠지, 짐작하며 남아있던 궁금증을 씻어낸다.


이십 대의 나는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위가 많이 창피했고, 내가 너무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고, 새어 나오는 슬픔을 꾹꾹 눌렀다.



다시는 사랑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왠 걸,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 선물을 퍼주면서 내 진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가끔 내 아이들에게도 이유 없이 선물을 사준다.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기념일 말고, 아무 관련도 없는 그런 날 인형을 사주거나, 장난감을 사주거나, 목걸이 같은 사소한 것을 선물한다.

그건 내 만족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은 물질적 마음이랄까?



어제는 양파를 썰지도 않았는데 울고 말았다.

요 며칠 컨디션이 안 좋더니 배와 허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날은 춥고, 배는 아팠지만, 점심도 라면으로 대충 때웠기에 저녁 준비는 해야 했다.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다. 너무 아파서도 아니었고, 눈이 매워서도 아니었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는 짜증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난 꽤 건강한 체질이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살았기에 운동 신경도 좋았다. 딱히 아픈 곳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명함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먹는 걸 신경 쓰지 않으면 배가 아프고, 조금만 앉아서 일하면 허리가 아프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편두통이 있어 약을 먹는다.

마흔 하나에서 둘로 넘어오니, 몸의 노화는 나이만큼 플러스 1이 아니라 플러스 10이 된 듯하다.



이제 더 이상 이십 대가 아니기에 몸의 체력은 저질이 되었지만, 감정만큼은 더 단단해졌다.

눈물을 애써 참지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도 않는다.

눈물이 나면 줄줄 흘리다 옷깃으로 쓰윽 닦는다.

내 옷소매에는 양파를 썰다 흘린 눈물과 감정의 기복으로 흘린 눈물과 남편과 싸우다 흘린 눈물이 묻어있다.


난 이 눈물을 짜디짠 중년의 고뇌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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