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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0. 2021

4. 넷, 성공

마흔, 둘의 단어

나에겐 남편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반항심이 있다. 좀 그런 편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쫌이 아니란 걸 남편의 입을 통해 알게 됐다.

“자기는 히피 기질이 좀 있어.”

히피? 히피가 뭘까? 뻣속까지 한국 사람한테 히피 기질이라니? 내가 아는 히피는 사회 부적응자인데…


따지고 보니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남들이 말하는 “이건 꼭 해야 한다,”라는 말에 반발심이 있으니.


성공을 위해서 미라클 모닝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1년 전만 해도 미라클 모닝 시간은 새벽 5시였다. 한참 그걸 따라 하겠다고 새벽에 일어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하루 종일 몸이 피곤하고, 아이들에게 짜증만 내는 내 모습에 질려버렸다. 새벽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일찍 잘 수도 없다.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서 꽁냥꽁냥 이야기하다 보면 밤 11시가 돼버린다. 아이들을 일찍 재워야 한다지만 내 품에 안고, 업고 재우는 아이들이 아닌데 어떻게 일찍 재우지?


5시였던 미라클 모닝이 최근엔 4시 30분으로 당겨졌나 보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4시 반에 일어나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낮을 위해 자야 할 시간에 왜 일어날까? 무엇을 위해서? 네시 반에 일어나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걸까? 안 피곤할까? 난 도저히 못 하겠다. 성공은 물 건너갔네, 갔어.



이십 대엔 빨리 사십 대가 되고 싶었다. 명확하지 않은 뜬구름 같은 미래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 사십 대가 되면 그런 고민 같은 거 안 해도 될 거라 생각했다. 안정적인 가정과 안정적인 일상이 존재할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사십 대가 되어보니 웬걸,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방황을 한다. 나이만 먹었지, 사고의 경계는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이 당황스럽다. 아, 좀 더 깊어지긴 했지만.



성공의 기준이 뭘까? 주식투자에 성공하고,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고, 자녀 교육에 성공하고, 책을 출간하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팔로워가 엄청 늘고, 인플루언서가 되고, 돈을 막 벌고…

이게 성공이라면 난 한참 멀었다.

그래도 매일 습관적으로 성공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본다. 김미경 TV를 보고, 존 리의 투자 이야기를 듣고,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튼다. 듣고는 있지만, 적용은 힘들어서

무심코 흘리며 본다. 듣기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으면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 이건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논리에 괜히 반발심이 생기고 만다.



처음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강의는 꼭 들어야 한다고 했고, 그 과정을 거쳐야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강의비는 왜 그리 비싼지. 반발심이 잔뜩 생기고 말았다. 흥, 두고 보라지. 강의 안 듣고도 글을 쓰고야 말겠어. 기어코 작가가 되고 말겠어!!


그렇게 혼자 글을 써서 작가가 되었으니, 난 성공한 건가?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해방되기 1년 전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6.25를 겪었고, 돈 못 버는 할 아버지 때문에 칠남매 중 장남으로 가족들 먹여 살리려 월남전 참전까지 했고, 기어이 공부해 교사까지 되었다가 때려치웠다.  흑염소를 키우면 염소가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닭을 키우면 닭들이 죽어버렸다. 닥나무를 하다 수출길이 막혀 그만뒀고, 정성으로 유자를 키우지만, 생각만큼 많이 열리지 않는다.


아빠의 삶이 실패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본인만 모르는 것 같았다.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사람이 바로 아빠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이 가장 편안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젊은 날의 고생은 술 한잔 기울일 때 안줏거리일 뿐, 근심도 걱정도 없이 산행을 하고, 유자를 가꾸고, 동물을 키우고, 집 한 채, 논 몇 평의 삶이 만족스럽다 말한다. 아빠는 성공한 사람일까?


기준을 정한다는 건 언제나 아리까리하다. 사회에서 딱 정해놓은 기준을 따를 것인지, 사람들끼리 암묵적으로 동의한 기준을 따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 기준을 만들 것인지.

어느 기준을 따르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잣대도 달라지고 만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과 실패 그 중간 어디쯤 머물러 있다. 어제보다 좀 더 전진했다면 성공 쪽으로, 조금 후퇴했다면 실패쪽으로 기울어질 뿐.

성공도 실패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딱 하루씩 성공해보자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연초에 큰 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삶의 목표도 딱히 없지만, 딱 하루만큼의 계획을 세우고 성공하다 보면 내 삶도 성공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지 않을까?


한 시간 책 읽기, 한 꼭지 글쓰기, 시 한 편 쓰기, 그림 하나 그리기, 카드 뉴스 만들기. 그리고 야채 가득한 요리하기.


그제도 어제도 나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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