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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09. 2021

6. 여섯, 관계

마흔, 둘의 단어


원래부터 관계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도 소수의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특별히 관계가 나쁜 사람은 없었다. 그건 그러려니… 하며 방관하는 성격 때문인 것같다. 나랑 맞지 않을 것 같으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겁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 때문에 해외 생활을 하는 내내 어려움이 있었다.



어디든지 한인 사회는 좁고 단단하다.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세계는 하나’가 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한인 사회를 견고하게 만든다. 물론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들의 커뮤니티도 존재하지만, 관계의 밀도 면에서 보자면 역시 한인회가 압도적이다.


5월이면 어린이날에 맞춰 행사를 하고, 한인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명절이면 한인 마트에 떡과 만두, 송편과 가래떡이 판매된다. 연말이면 한인회에서 장기자랑을 주최하고 다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논다. 한인회 회장을 뽑고, 임원단을 뽑고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한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난 항상 한발 뒤로 물러 난 방관자가 되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인간관계가 더 좁아졌다. 코로나로 만나는 사람이 더 줄었고, 일주일 내내 가족들하고만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학교에 가도 한인 가족은 우리가족 뿐이다. 

지나가다 “Hi how are you?” 정도로 가볍게 인사는 사이는 그래도  있다.

“Long time no see!” 하고 말할  있는 사이는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 생활은 편하기도 하지만 가끔 난처하기도 하다.




“그 사람, 알아요?”

친구의 점심 초대에 갔다가 어느 부부를 만났다. 역시나 처음 본 분들이었고, 이 기회에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분이 물어보는 사람 중,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그 분이 언급한 사건 중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떻고, 저 사람은 이래요. 이건 좋고, 저건 나빠요. 이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안돼요.”


피곤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좋은 얼굴로 인사하며 헤어졌지만, 내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확신하고 말았다.


이런 성격으로 사회생활을 계속 했다면,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었을까? 냉정하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취급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이지만 아는 한국 사람은 별로 없고, 그렇다보니 정보도 없어서 어디 가면 뭐가 있고 어디가면 뭘 살 수 있다는 소식조차 모르고 산다. 

 근처 마트에서 한국 라면을 발견하면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지만,  멀리 한인 마트까지 가서 한국 음식을   에너지는 없다. 

삼겹살을 먹으면 좋지만, 없으면  먹는다. 


정보에 취약하고, 관계는 얇고, 활동 범위는 좁은 사람.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만큼의 범위와 관계가 좋다.



현실에서는 관계에 소극적이지만, sns에서는 꽤 적극적이다. 온종일 혼자 웅크리고 앉아있어도 지루한 줄 모르겠다.

손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얼굴 보지 않고 나누는 대화가 마음 편하다.

먼저 댓글을 달고, 먼저 좋아요를 누르고, 먼저 친구 신청을 한다. 꼭 만나지 않아도 연결되는 환경은 나처럼 소극적인 사람에게 최적화된 세상이다.


이렇게 쉽게 맺어진 관계는 쉽게 끊어지기도 하고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손가락 하나로 언팔을 하면 관계는 끝난다.

서로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받게 되면 조금 더 깊어진다.

지금 나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은 대면으로 알던 사람 반, 비대면으로 알게 된 사람이 반이다. 점점 더 sns로 알게 된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인도에 살고 있다는 환경적 결함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 가면 꼭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말만이라도 너무 고마워 꼭 한국에 가고 싶어진다.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잘 나가는 작가도 아닌 나를 만나고 싶은 이유는, 온라인으로 만들어진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계는 상대방의 단점은 철저히 숨기고 좋은 면만 보여준다. 상대방의 체취도, 습관도, 성향도 블라인드 처리된다.


그들이 날 직접 만난 후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심한 사람인 줄 몰랐다며 뒷걸음 치거나 수다스러운 글과 다르게 침묵을 지키는 말 때문에 어색해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나인 걸.


직접 만난 후, ‘어우, 진짜 아니네.’ 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 지금껏 쓴 글이 거짓이라는 뜻이겠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좀 더 진실한 관계를 맺고 싶다. 정보나 주고 받는 관계 말고, 마음을 주고 받는 관계.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한 관계 보다 글과 사진 속에 숨은 뜻을 알아 볼 수 있는 관계. 쉽게 끊어버리는 관계 말고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관계.


내 관계의 범위와 밀도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오늘도 직접적인 관계보다 sns 관계가 좋아서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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