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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14. 2021

당신에게 행운이 오기를, 붓꽃

[꽃 힐링 에세이] 당신의 꽃

제목을 썼다 지웠다. 이렇게 써도 이상하고 저렇게 써도 이상하다.

식상한 제목은 싫은데 그렇다고 딱히 참신한 제목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기본으로 해야겠다.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 그리고 다시 썼지만 영 이상해 다시 지웠다.

멍~ 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노트북을 껐다.

오늘은 도저히 못 쓰겠다. 내일은 생각이 나겠지....



그런 날들이 있다.

쓰고 싶은 글감과 소제는 있는데 글이 써지지 않는 날.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생각하며 써야 하는데, 유독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자꾸만 글이 한 곳으로 향하는 날.





 

sns  특성상 올라오는 게시글만 봐서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알기 힘들다. 서로 맞팔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대댓글을 달지만, sns 인간관계는 종이처럼 얇다. 언팔을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만난 인연이라도 유독 끌리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브런치 작가님들을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면 유독 반갑고 고향사람처럼 끌린다.

그렇게 그를 알게 되었다.

그의 정체성은 '출간을 앞두고 있는 브런치 작가'였다. 그럼 또 열심히 출간을 축하해 줘야 하는 법! 이왕이면 책도 사서 읽고 서평도 쓰고 홍보도 해주면서 나름의 유대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출간을 앞둔 책의 제목을 보고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 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얼마 전에 수술을 했다. 다행히 전이가 되지 않아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도 되었고, 방사선 치료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언니가 암에 걸린 후, 암과 관련된 책이나 사람들이 유독 눈에 밟혔다. 어쩌면 당연한 이끌림 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브런치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글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좋아요를 누르는 일뿐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줄다리기가 너무 선명해 울컥했다.


그녀의 게시물에서   사진 하나.

아픈 이후 충동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

아침에 눈을 뜬 후 느닷없이 붓꽃이 보고 싶어 꽃을 보러 갔다는 글을 보고

나는 내 삶을 떠올렸다.




\

나중을 위해 참고 사는 일이 많다.

해보고 싶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서, 뭔가 사고 싶지만 돈을 조금만 더 모아서,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나는 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는 말처럼 막연한 말이 또 있을까....

내 아이는 항상 '나중에'가 정확히 언제냐고 반문하는데,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 반문할 수 조차 없는 '나중에'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나중이 지금이 될까?

과연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노트에 하나하나 적었다. 환경 때문에 못하는 일 빼고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헤아렸다.

작가님처럼 조금은 충동적으로 살고 싶어 졌다.

 그게 뭐든,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서...



아직은 날이 화창하고,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네.
아직은 오늘 그리고 여기가 우리를 붙들고 감싸주네

[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그의 삶은 모르지만,

그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나는 모든 행운이 작가님에게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보라색 붓꽃을 그렸다.






글의 제목을 다시 지웠다. 좀 더 임팩트 있는 제목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더 이상의 꾸밈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내 마음을 그대로 써야겠다.


당신에게 행운이 오기를....

삶의 촉수의 브런치 (brunch.co.kr)



작가의 이전글 일부러 천천히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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