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May 19. 2021

5월에 태어난 나를 위한 선물, 후쿠시아

[꽃힐링에세이]당신의 꽃

생일날이 되면 이상하게 우울해진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방방 떠다니던 마음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진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작년 생일에도 그랬던 것 같다. 2년 전에도 3년 전에도... 

생일을 생일답게 보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은 나이의 아줌마가 생일이 무슨 대수인가 싶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챙겨도 그만, 안 챙겨도 그만인 것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마음은 매번 우울해진다. 무슨 특별한 이벤트나 선물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강물처럼 사는 인생을 인정받고 싶을 뿐. 

인정의 욕구는 나이가 들어도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아기 때 사진이 없어?"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응.... 엄마가 네 번째 딸로 태어나서 그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들을 원했거든. 그런데 엄마가 또 딸이라서 많이 서운하셨나 봐. 그래서 사진을 안 찍었나 봐."

"에이, 너무했다. 딸이라고 그러는 법이 어딨어?"

"응, 옛날엔 다들 그랬어."

"내가 할머니한테 너무하다고 말할까?"

"아니, 말하면 안 되지. 할머니 속상하시지. 대신 지금 사진 많이 찍고 있잖아. 그렇지?"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가장 속상한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열 달을 품고 배 아파 아기를 낳았던 엄마 자신이라는 사실을.

누구의 죄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신의 섭리라는 사실을. 

목적도 없이 이유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생은 없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때가 되면 떨어지고, 

거름이 되어 

그저 생의 순환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5월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하는 선물을 고르라는 남편의 말에 아마존에 들어가 열심히 찾아봤지만, 딱히 사고 싶은 게 없다. 쇼핑몰에 가서 선물도 사고 외식도 하면 참 좋으련만, 집 밖으로 안 나간 지 한 달이 넘었다. 


가족들 생일이면 시끌벅적하게 울리던 가족 단톡 방이 어째 조용하다. 스승의 날 바로 다음  날인 내 생일은 항상 이렇게 존재감이 없다. 

"오늘 내 생일이야~ 다들 축하한다고 말해줘~"

가족들에게 대놓고 축하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제야 언니들은 요란하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미역을 꺼내 물에 불렸다. 올해는 기필코 남편이 끓여 준 미역국을 먹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결혼 전에는 요리도 곧잘 해주던 사람이 지금은 요리와 담을 쌓고 산다. 

미역국을 끓일 줄은 알까? 





후쿠시아 @goodness 선량



인스타그램에서 후쿠시아 꽃을 보았다. 

어쩜 이렇게 영롱할까... 

하늘을 바라보는 꽃들과 다르게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꽃무리가 마치 자신의 화려함을 부끄러워하는 듯 느껴졌다. 

좀 더 당당해도 될 텐데, 좀 더 자신 있게 자신의 생을 뽐내도 될 텐데... 

어쩌면 그래서 더 눈길을 끄는지도 모르겠다. 


벌새와 후쿠시아 @goodness 선량



꽃도 나뭇잎도 이름도 없는 들풀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때가 되면 자신을 내어주고 때가 되면 사라지고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날 것이다. 


나는 마젠타 블루의 꽃을 그리며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꽃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벌새와 후쿠시아 라인 드로잉 @goodness 선량





10년 만에 얻어먹는 미역국은 맛있었다. 

배달시킨 생크림 케이크는 완벽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허락된 내 삶을 허투루 쓰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전히 인정받기 위해 살지만, 

가장 나를 인정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에게 행운이 오기를, 붓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