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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23. 2022

8. 여덟, 쓰레기

마흔, 셋의 단어

**뉴델리에서 쓰기 시작했던 " 마흔, 둘의 단어" 매거진에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느새 밀라노에 살고 있고, 마흔셋이 되었네요.

매거진을 일 년 넘게 쓰지 않았으니, 삭제할까? 고민하다 마흔둘에 썼던 글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았어요.

삭제하기엔 조금은 아까워서 마흔이라는 정체성이 제게 머물러있는 동안 계속 써보겠습니다.

지금은 마흔셋이니, '마흔, 셋'의 단어를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나라마다, 각 도시마다, 숙소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함부로 버렸다가는 과태료를 낼 수 있다.

집에서 생산되는 모든 쓰레기의 책임자는 역시 주부인 나이다. 내가 버리지도 않은 쓰레기를, 심지어 내가 싸지도 않은 것을 뒤처리한 쓰레기를, 생활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처리해야 할 때 가끔 자괴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넘치는 쓰레기를 그냥 둘 수도 없고.....


매일 버리고 버려도 새롭게 생산되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생겨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종류대로 나누어 담아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쓰레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매일 내 마음에서 쓰레기가 생산된다. 지금처럼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거리에 뒹구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감정의 낙엽이 나뒹군다.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거늘, 가을만 되면 매번 이렇게 감정의 쓰레기가 생기는 것이다.


음식물, 플라스틱, 병, 종이를 종류별로 나누어 담아 분리수거함애 버리는 것처럼 감정의 쓰레기도 종류별로 나누어 본다.


얼마 남지 않는 마흔셋의 시간에 대한 회한.

올해도 특별히 이룬 것이 없다는 아쉬움.

조금 더 열심히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서늘한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느끼는 한기.

그저 나의 마음을  지긋이 짓누르는 우울.


잘 나누어 둔 감정의 쓰레기들을 뭉뚱그려 꼭꼭 눌러 담아보자.

이제 미련 없이 분리수거 함에 버리자.

텅 빈 마음에 다른 것들을 채워 넣어보자.


곧 다가 올 마흔넷에 대한 기대를,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에 자족을,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무거운 우울의 감정도 함께 날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꼭꼭 채워 담아보자.


매일 버리고 버려도 다시 생겨나는 생활 쓰레기처럼 내 마음속 감정 쓰레기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자.

쓰레기는 잘 모아 버리면 되고, 계절은 변할 것이며 나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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