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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1. 2023

다양한 감정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기쁨

(공동매거진) 희로애락애오욕 중에 희

둘째 아이의 태명은 ‘기쁨’이었다.

방글라데시 작은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를 보더니 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둘째가 딸일 거라고 확신했다.


임신 8개월에 아이를 낳으러 한국으로 갔다. 짐가방 안에는 큰아이(아들)가 입었던 파란색 아기옷이 들어있었다.


“고추가 안 보이는데? 딸이네!”

산부인과 의사인 사촌언니가 말했다. 나는 그때서야 핑크색 신생아 옷을 준비했다.


아이의 이름에 기쁘다는 표현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기쁠 ‘희’를 넣고 싶진 않았다. 해외에 살고 있으니 영어로 쓰기 쉬운 이름, 기쁨과 관련된 이름, 첫째 아이 이름과 결이 비슷한 이름.

하늘소(霄), 웃을 은(听).

그래서 아이의 이름은 소은이가 되었다.


이름처럼 아이는 잘 웃었다. 방실방실 웃으며 사람들에게 잘 안겼다. 아이가 웃으면 한쪽에 볼우물이 깊게 생겼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

.

.

.


착각이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프랑스 학교의  선생님들 중 아이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숀, 썬, 선, 소온, 소인, 수인, 쏘니, 써니….”

외국인들에게 ‘은’ 발음이 어렵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이는 태양이 되었다가 아들이 되었다가….

요즘엔 ‘손흥민’이 되기도 한다.


이름을 왜 이렇게 어렵게 지었냐고 따지는 딸에게

“넌 하늘 소, 웃을 은, 이니까…. “

라고 말을 흐린다.

그러면 딸은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한다.

“하늘소는 곤충이잖아~”


10살 아이는 더 이상 생글거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푼다. 시험 보기 전날이면 온갖 짜증을 낸다. 내 동선을 따라다니며 쫑알쫑알 잔소리를 한다. 나는 아이의 조그마한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친다.

“말 좀 그만해!!”




5년 전, 나를 위한 글을 혼자서 쓰다 독자를 위한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것이 브런치였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오랜만에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뛸뜻이 기뻤다. 날마다 브런치에 글을 썼다. 내 이야기, 가족 이야기, 내가 사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 현재의 이야기, 일상 에세이, 소설, 동화..... 뭐든 가리지 않고 썼다. 아니, 써재꼈다는 말이 맞겠다.

하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진 않았다. 글을 쓰는 행위가 내 감정을 해소하는 통로가 되었지만,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브런치 작가로만 남아있었다. 그것이 한동안 나를 좌절시켰다. 누군가가 먼저 알아봐 주길 기다리는 시간은 지리멸렬했다. 희망과 실망을 반복적으로 느꼈다. 글을 쓰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 먼저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 합격’을 위한 프로그램인 ‘브런치 타임’을 새롭게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고민만 하던 프로그램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강의가 꼭 필요한 건지 의문이 들었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기획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에도 글에 대한 열정이나 동기가 없다면 브런치를 꾸준히 하기 힘들다.

내가 5년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함께 활동했던 작가님들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이유, 브런치를 떠난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유, 합격자가 계속 배출되고 브런치 공모전 참가자도 엄청나게 많은데 브런치 글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다들 의문을 갖는 이유.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시작하길 망설였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브런치 작가되기' 자료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꽤 많은 이들에게 보내주었지만, 그 자료를 보고 브런치에 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던 브런치 프로그램을 얼마 전 시작했다. 줌 강의를 하고, 열 세명의 멤버에게 브런치 신청 기획서와 신청 원고에 대한 일대일 피드백을 했다.

그리고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브런치에 쓰는 글을 '초고'라고 생각하세요. 브런치에 쓴 글이 반응이 없거나 구독자가 늘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야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의 기쁨이 오래갈 수 있어요. "




”작가님, 저 합격했어요!! “

첫 번째 합격자가 며칠 만에 생겼다.

“작가님 저도 합격했어요!!”

다음 날 또 다른 멤버가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보다 더 기뻤다.




"엄마, 이제부터 날 은소라고 불러 줘!"

하늘 소, 웃을 은, 딸이 말했다.

"알았어. 은소은소은소은소은아~"

나에게 기쁨이었던 딸아이는 이제 기쁨이었다가 걱정이었다가 짜증이었다가 슬픔이었다가 희망이었다가 다시 기쁨이 된다.


기쁨이란 기쁘다는 감정 하나만 있을 때보다 다양한 감정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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