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워킹맘
예상에 없던 워킹맘이 되었다. 그것도 밀라노에서!
밀라노의 워킹맘들은 대부분 베이비시터를 두거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만, 우리는 베이비시터를 둘 형편이 되지 못할뿐더러 친인척도 없기 때문에 내 근무시간은 아침부터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는 시간까지이다. 겨우 하루 중 반나절의 근무지만, 그 정도의 근무를 위한 전후사정은 나름 치열하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살림과 함께 온라인 선량한 글방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글방 일까지. 처음엔 잘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첫 한 달 동안은 꽤나 힘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슬로리딩을 하고, 아침 준비와 아이들 간식까지 준비하고 나면 어느새 아침 7시.
그때부터 출근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인다. 8시에 모두 함께 등교와 출근을 한다. 9시 즈음에 사무실에 도착해 하루치의 영수증을 붙이고, 출금을 입력하고, 전표등록을 한다. 그리고 틈틈이 법인장님이 시키는 일을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아이들 픽업시간이 다가온다.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픽업해 집으로 온다.
집안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저녁준비를 한다.
저녁을 차려놓고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운동을 하러 나간다.
10시가 다 되어 침대에 누워있으면, 특별히 한 것도 없이 하루가 홀라당 지나가버린 그 느낌이 참 싫다. 그리고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으며 잠을 잤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몸과 마음에 루틴이 생겼다. 내가 원해서 하는 출근은 아니지만, 나로 인해 남편의 부담이 줄어들기를, 그리고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실수만 하지 말자는 마음을 가볍게 장착했다.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게 핑계라는 것도 알았다. 회사에서 아이들 학교까지 가는 시간 약 1시간. 지하철에서 글을 쓰거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가 무슨 글을 써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꽤 안심된다.
내친김에 새로운 강의와 모임도 만들었다. 강의는 토요일 주말에, 글쓰기 모임은 금요일 저녁에.
이렇게 5월 한 달을 꽉 차게 살아낼 작정이다.
“엄마, 우리 다음 주부터 방학인데 뭐 할 거야?”
“방학이라고? 또?”
아뿔싸….
아이들의 방학을 잊고 있었다….
프랑스학교는 유독 방학이 많다. 2달 학교에 다니고 2주 방학이 있다. 1년에 총 3학기가 있는데 그 학기가 끝날 때마다 방학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부활절 방학, 크리스마스 방학도 있다는 사실….
분명히 얼마 전에 부활절 방학을 보냈는데 또 방학이라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니???
이탈리아에서는 만 14세 이하 아동을 성인 없이 집에 둘 경우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 (만 14세면 우리나라로 중2 또는 중 3이라는 사실…)
그래서 밀라노의 초등학교에서는 일하는 부모님을 위해 방과 후 탁아소를 운영한다. 방학 때도 캠프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참여시킨다.
우리 아이들은 유독 방과 후 활동을 싫어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 매번 참여시켜보지 못했다.
웃긴 것은 고등학교가 오후 1시에 끝난다는 사실이다. 14세 이상 청소년은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나.
오후 1시~2시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사 먹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들끼리 모여 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우리 아파트에서 우리를 아는 사람은 많겠지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를 신고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만 두고 출근했다가 혹시라도 신고를 당하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할 일이 있는데 내가 회사에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민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을 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무실에 직원이 몇 명 없고(남편과 나 포함해서 총 4명뿐),
남편이 법인장이며,
주중에 사무실로 찾아 올 손님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꽤 조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회의실에 몰아넣어놓고, 나는 4월 출금내역을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한참 일을 하다 눈을 드니, 저쪽에서 아이가 날 보며 웃고 있다. 나는 눈을 찡긋 하고는 다시 고개를 박고 숫자를 입력했다.
점심을 대충 먹고 오후가 되니 아이들이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의 손에는 배드민턴이 들려있었다. 단지 내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치려는 모양이다.
드디어 마감을 하고 퇴근을 했다. 밖으로 나가니 아이들과 남편이 나무 하나를 흔들고 있다. 배드민턴 공이 나뭇가지에 걸린 모양이다. 그 모양이 꽤나 웃겨 한참을 웃었다.
방학 2주 중에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남은 일주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
졸지에 워킹맘이 된 나는 아동학대와 직장 사이에 서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