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은 학교의 심부름꾼
매일 아침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행정 직원 아마로이고 또 한 명은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발레리이다.
아마로는 키가 크고 눈이 서글서글하게 생긴 서양 남자로, 정문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학부모들과 눈을 마주치며,
“bon jour( 봉 쥬르)?”
라고 인사를 한다. 입가엔 살짝 미소를 머금고 아침마다 건네는 인사에 기분이 확 좋아지곤 한다.
발레리는 뭄바이 프랑스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다
. 그녀는 키가 크고 긴 머리를 단정히 하나로 묶은 모습에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서양 사람들의 외모는 동양인의 모습과 달라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교장선생님은 이 학교에서 가장 바빠 보인다. 아침이면 교문 앞에 서서 모든 아이들에게,
“comment ça va? (잘 지냈어)?”라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고, 모든 부모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아이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피곤한지, 아이가 다친 것 같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물어본다.
한 번은 지안이가 학교 가는 길에 넘어져 손바닥에서 피가 조금 난적이 있었다. 그녀는 지안이의 손을 보더니 교장실로 데려가 직접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이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뭄바이 프렌치 스쿨 초등학생들은 아침이면 현관에 가방을 놔두고 운동장으로 달려가 시끌벅적하게 논다. 그리고 8시 15분이 되면 누군가가 박수를 쳐서 신호를 보낸다. 그 박수소리는, “이제 교실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라는 의미이다. 박수를 치는 그 누군가는 대부분 교장선생님이고, 그녀가 없을 때는 행정직원 또는 다른 선생님이 담당한다.
발레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음악 수업도 담당하고 있다.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수업만 하는 날에는 11시부터 아이들을 모아놓고 노래를 가르친다. 요즘은 라이온 킹 노래를 배우고 있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맞춰 노래를 해야하는 한국에서의 음악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저 아이들이 노래를 배우는 것인지, 그저 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여러 일 중에 하나는 프렌치를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끝없는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학기 초, 프렌치를 잘 못하던 내 두 아이에게 과외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해줘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어보곤 했다. 그녀는 한국 아이들을 처음 교육해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프렌치도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계속 고민을 하는 듯했다.
(반대로 방글라데시 다카 프렌치 스쿨에서는 저학년들에게 과외를 권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쉬어야 하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꼭 필요하다면 학교 선생님을 통해 보충 수업을 해주겠다는 태도였다. 이 차이는 비프랑스 아이들의 비중이 많고 적음의 차이인 듯하다. 다카의 학교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비프랑스권 아이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잘해도 아주 잘한다고 말해주었고, 조금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뭄바이 학교는 대부분이 프랑스 아이들이기 때문에 프렌치를 조금 못하면 크게 걱정을 하고, 과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곧 잘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과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숙제를 도와주고, 주말에 프렌치 영상을 찾아 틀어주는 것이 다였다. 다행히 3개월 후부터 아이들은 잘 적응을 했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요즘 나를 보며 아이들을 위해 프렌치를 배워야 하지 않겠냐며 자주 물어본다. 그녀는 나 같은 부모(프렌치를 모르는)를 위해 성인 프렌치 클래스를 만들었고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녀는 선생님과 학부모 미팅에도 꼭 얼굴을 내밀고, 유치원 아이들의 소풍이나 견학에도 꼭 따라간다.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꼭 나타나 학부모들을 만나고 다닌다. 가끔 그녀의 등장이 부담스러워 눈을 내리깔고 있기도 하고, 딴짓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안이도 교장선생님을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 그녀의 질문에 지안이는 대답을 잘 못하고 그저 눈만 끔뻑거리고 있다. 대답을 하더라도,
“ 위(yes)”, 또는 “농(no)”이라고 아주 짧게 대답하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내가 더 민망해지곤 한다.
내가 본 프랑스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가장 바빠 보이고 가장 일이 많아 보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닌다. 그렇다고 그녀의 권위가 없어 보이지도 않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한국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몹시 비교되기도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들의 교장 선생님들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 선생님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교장실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조회 시간에 긴 연설을 하고, 내가 이 학교 학생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었다.(지금은 그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프랑스 학교 선생님들은 교장을 맡기 싫어한다고 한다. 일도 제일 많고, 학교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녀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관심이 아이들을 위한 관심인 것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덕분에 아이들도 나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