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맞춤인 것들

작은 가방과 큰 가방

by 온이로

작은 가방과 큰 가방 사이에서 고민하다 작은 가방을 들고 나왔다. 항상 고민하고 작은 가방을 선택한 뒤 후회한다.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크고 작은 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애매한 크기의 가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쏙 마음에 드는게 없다. 물병을 넣을 주머니가 따로 있으면서 주머니가 여기저기 많고 메인 주머니가 큰, 그러면서도 물건 찾기가 쉬운 가방. 이 세상 어딘가엔 그런 가방이 존재할텐데 그걸 찾아내는 것은 다른 얘기다.


집에 가방이 스무개가 넘어가는 것을 직감했다. 크고 작은 검은 가방들. 나는 이상하게 검은 색만 사게 된다. 색이 있는 것들은 그 색만으로도 나를 괴롭히는 재주가 있다. 신발도 스무 켤레가 넘어가는 것을 알아버렸고, 옷가지도 이젠 옷장이 터질 지경이다.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이었지만 지금처럼 무직인 상태로 이렇게 물건을 가득 가져보긴 처음인 것 같다. 맥시멀리스트의 삶이란 늘상 그렇다. '이게 어딘가에 있었는 데 어디에 놔뒀더라?' 와 '아, 그거 버리지 말 걸.'요즘도 지금보다 30키로그램은 날씬했을 과거의 옷들을 떠올린다. '이제 살이 빠지고 있는 데 그 옷들은 어디서도 구하지 못할거야.' 어느새 2026년이 다가오고 있다. 두번의 생일 기록을 브런치에 쓰고 여러 잡다한 글들을 여기저기에 썼다. 생각이 미치는 대로. 나는 생각도 맥시멀이라서 모든 말 하나 행동 하나에 많은 의문을 품고 산다. 꼭 의문이 아니더라도 사유하는 걸 이제는 즐기는 지경에 도달했다. 예전엔 나의 끝없는 사유가 지긋지긋한 것이라 미워했지만 이제는 용서하고 겸허히 받아 들일 수 있다.


나에게 안성맞춤인 가방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다 너무 크거나 작고, 무겁거나 어깨 끈이 불편하다. 세상에 널린 그 수많은 가방 중에 내 가방은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안성맞춤인 사람. 그런 사람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독서모임에 다닌 지도, 보드게임 모임에 다닌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가까운 몇 년의 과거에 비해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언제 나를 까발려지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나의 전부를 알고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나 또한 나를그런 방식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것은 다 허상인걸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따뜻할 줄 알았던 카페가 온 창문을 활짝 열고 인센스 스틱을 피우고 있다. 손가락이 시리지만 코 끝을 맴도는 인센스의 향이 추위를 로맨틱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도 차가운 바람도 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거한다. 벌써 12월이다. 결전의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다정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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