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

by 온이로

*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아침은 여전히 밝았고, 햇빛은 따스하다 못해 따갑게 뒷목에 내리쬔다. 봄이 온다. 겨울은 끝을 알리고 벚꽃은 진다. 새로운 해다. 새로운 시작이다. 빨간 버찌가 열리는 여름의 벚꽃 나무는 봄의 확연한, 그 강렬한 인상보다는 평범하다. 그러나 가장 푸르고 앙증맞은 그때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나에게 벚나무는 항상 여름이다.


입원할 동안 바라보았던 바깥의 눈이나 벚꽃같은 것들이 삶의 대한 기대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있고, 내가 이곳을 나가 그것들을 마주할 준비가 안돼있다 것을 느낀다. 원래부터도 거의 칩거생활을 하던 나였다. 조울증과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집 안으로 파고들게 했고, 입원의 경험도 많았다.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세월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던 날들을 떠올렸다.


아침의 안개는 습하게 젖어 물기를 만들어 낸다. 차가운 공기도 서서히 따뜻해져 온다. 해는 안개 뒤로 더 높이 뜬다. 나뭇가지는 꽃잎을 떨구고 잎을 피워낸다. 남아있는 꽃받침들은 약간은 기괴한 모양새로 찌르듯 나뭇가지를 메우고 있다. 앞만 보며 질주하던 나의 다리를 멈추게 하고 땅을 보게 한다. 지표면의 그림은 미묘하고 낯설다. 나무다리의 틈새로 흐르는 강물은 그 위에 맺힌 이슬과는 전혀 다른 크기와 힘으로 흘러간다. 미끄러지는 감각을 기억하며 다시 마른땅으로 나아간다. 가파르게 휘는 곡선을 달리며 나아간다. 가지를 밑으로 길게 뻗은 나무는 머리를 건드린다. 따스한 해도, 지는 꽃잎 위로 돋는 잎도, 날아다니는 나비도 다 따뜻한 날을 연상시키지만 머리에 닿는 가지의 감촉은 더욱 봄이 아닌 여름을 연상케 한다. 초여름의 날씨는 나를 설레게도, 가라앉게도 한다.


여름의 더위는 추운 중환자실의 과거를 잊게 해 준다.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던 순간으로부터 벌써 3개월이 지났다는 사실은 내가 그동안 살아있었다는 증명이 된다. 살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 동안 나의 마음은 버찌를 떨어지게 하는 바람에 같이 흔들렸다. 조증 삽화는 뜨거운 공기에 더욱 심해지고 정신은 그 길로 속절없이 파고든다. 약간의 우울과 생생함이 공존한다. 에어컨을 틀고 내 방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바깥은 나를 잠에 빠져들게 했다. 찢어진 살갗에서 나오는 빨간 피와 끝없이 떨어지는 내 모습에 대한 상상은 자살에 대한 의지를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살시도 이후에 우리 집은 너무나도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오빠가 나를 항상 따라다녔고 엄마는 나의 눈에 띄지 않으려 숨어 지냈다. 나의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나를더 자극시킨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렇게 자유를 잃은 나는 마녀의 탑 꼭대기에서 길고 긴 머리카락을 땅에 늘어뜰일 수 밖에는 없다.


이제는 혼자서도 병원에 간다. 눈이나 벚꽃은 아니지만 길을 가득 메우는 버찌들을 밟으며, 푸른 잎사귀를 흔들리게 하는 바람을 맞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온 피부가 햇빛을 들이마시는 것을 느낀다. 내 관절과 척추가, 내 등 근육과 팔다리 근육 하나하나가 펴지는 것을 느낀다. 내 시신경이 예민하게 반가워하는 것을 느낀다. 발뒤꿈치가 땅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내 땀구멍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 그것이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에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곤 한다.


그러나 햇빛은 모든 것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햇빛이 나를 비출때면 언제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활기를 되찾는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대낮이 주는 힘을 믿는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 그것의 생명력이 나에게 살아있으라 말하는 것 같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내리쬐는 햇빛, 나무그늘 밑에서 느끼는 약간의 시원함. 그것들은 내 일상에 합쳐져 살아있음을 계속해서 확인시킨다. 회복의 시간. 병원을 나온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자해하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초기 때 모든 것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의 상태로 아무것도 한지 않았던 모습에 비해 지금의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게임도 하고, 영화까지 보는. 확실히 삶을 살아갈 의지가 생겨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토하지 않고 자해하지 않았던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예전처럼 강한 충동이 나를 감싸지는 않는다. 참고 견디면 지나갈 수 있는 감각들. 다른 행동들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들. 그것을 도모하며 살아감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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