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이미 열려있다
여명. 밤을 깨우는 빛은 점점 느리게 시작된다. 깊은 빛으로 갈비와 척추 사이를 헤집으며 파고든다.
붉은빛. 배어 나오기 시작한 피처럼 맑고 투명한 그 색으로 피부를 적신다.
축축한 빛은 온전히 몸을 뒤덮어 감싸 안고 새 날의 기쁨을 흘린다.
검은 새와 하얀 새는 날아오른다.
요란한 날갯짓의 소리를 내며 빛을 따라 저 위로 활두한다.
날갯짓에 맞추어 나도, 나도. 하며 뛰고 나를 듯 푸드덕 인다.
하지만 발은 땅에 박힌 것. 땅에서 나서 땅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경외와 한탄의 눈물을 흘린다. 빛과 상공의 도착지점을 본다.
나의 일기에는 새를 표현하는 어구가 많이 등장한다. 하늘을 나는 자유를 가진 그것의 모습은 나를 옥죄는 것들을 벗어나는 듯했고, 정말로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날아가는 듯했다. 나는 여전히 새장에 갇혀 있지만 바깥세상의 새들은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인다. 유리병 속 벼룩 이야기를 아는가. 처음엔 병의 뚜껑을 닫아둔다. 그러면 벼룩들은 본분의 힘으로 뛰어오르지만 뚜껑에 가로막혀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리다 뚜껑을 열어주면, 뚜껑 밖으로 뛰는 방법을 잊고 그 높이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새장 속의 나도 그럴지 모른다. 새장의 문은 항상 닫혀있었고, 나는 날갯짓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새장 밖으로 나는 법을 잊은 채 새장 안에서 푸드덕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열린 것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구분할 수 없다. 낙관과 긍정으로 날아가는 힘을 내는 것보다 비관과 부정으로 새장 안에 갇힌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새장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던 시절에는 새들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그들과 함께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정함과 사랑을 가지고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새장도, 족쇄도 없이 아주 온화하게 보였다. 나는 비정을 가지고 커왔기에 새장은 애초에 나에게는 작은 것이었고 깃털이 삐져나올 만큼, 족쇄가 발을 파고들만큼 자랐다. 그럼에도 바깥은 - 내가 언제나 동경 마지않던 -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족쇄가 풀리는 순간을, 새장의 문이 열리는 순간만을 기다려 오면서도 어느샌가 그것을 핑계 삼아 날갯짓을 포기한 것 같다.
비밀스러운 탑에서 긴 금발의 머리카락을 빛내며 사는 소녀를 아시는가? 나는 라푼젤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 대한 공포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보다 더 강한 자신의 자유의지로 밖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꿈을 노래하고 꿈을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라푼젤을 대단히 여기는 것은 꿈을 이룬 순간, 더 이상 탑에 갇힌 자신이 아닌 새로운 자신으로 더욱이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꿈을 가진다. 나의 꿈이라 하면 보통 직업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으레 그러듯 교사나 배우, 언제는 잡지 편집장을 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자신마다 미래의 종국을 찾곤 한다. 꿈을 거창한 미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꿈을 향한 하루하루를 미래에 대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디에 닿아있을까. 나의 꿈은 그저 병으로부터 탈출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새장을 나가서 위험하다 불리우던 외부의 세계를 맞닿았을 때, 그대는 진정 나를 위한 꿈을 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