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탄생, 죽음의 예정

해를 따른 소멸

by 온이로

처음엔 그저 신이 났다. 밝고 환한 햇빛, 시원한 바람, 풀 내음, 나무 소리, 사람들의 웃음 혹은 탄성과 같은 소리, 나무가 흔들리고 새와 고양이가 우는소리. 기쁨으로 뛰며 온몸을 흔들고 바닥에 뒹굴어 부대꼈다. 작은 잎나무 하나에서 새로이 자라는 가지가지들을 보며 사람들은 감상에 젖었다. 오래된 나무 밑에서 수많은 가지 사이로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풀밭에 쭈그리고 앉아 풀 사이의 벌레들을 보았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해를 쳐다보았다. 눈을 감거나 뜨고, 나무나 풀이나 고양이를 만지고, 걷거나 서있거나 앉으며 이 모든 순간을 느끼려는 그들을 보며 사랑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자연에게 느끼는 경외심, 편안함, 자유로움, 순수한 모습으로 그들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풀 밭에 쪼그린 사람 곁에 서서 땅을 본다. 한시바삐 움직이는 벌레들은 마치 풀들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움직이듯이. 해를 보는 사람 뒤에 서서 해를 본다. 옅은 구름에 가려 있지만 해는 그 빛을 내뿜고 있다. 어스름이 비쳐오는 빛. 눈을 감는다. 눈꺼풀에 비치는 빛을 느낀다.

그때, 마치 지금 이 순간이 탄생의 순간이라고 느낀다. 태초의 순간이라고 느낀다. 춤을 추고 싶어진다. 나를 가리는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나를 두렵게 하는 눈들을 지워버리고, 태아의 모습으로 햇빛과 구름과 바람의 요람에 쌓여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폐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뱉는다. 으어어어. 내 목소리가 마치 어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나오는 대로 운다. 내게 들릴 만큼만 내뱉는다. 남들이 들을 만큼 내뱉는다. 나무와 풀이 들을 만큼 내뱉는다. 해가 들을 만큼 내뱉는다. 머릿속으로 내 모습을 상상하며 조심스럽게 춤을 춘다. 눈을 감은 나는 그저 땅과 하늘과 해만이 존재하듯이 느낀다. 그리고 점점 해가 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해가 지면 나도 질 것이라는 걸 안다. 소멸. 죽음이라는 이름의 끝. 해 질 녘 노을에서 나는 태어나 해와 함께 진다.


한때 연극을 했던 적이 있다. 배우로의 나는 별로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었고, 딱히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배우로 참여를 하거나 공연 준비를 할 때가 아닌 강사진이 와서 특별한 수업을 하는 날을 좋아했다. 시를 몸으로 표현하기, 지역의 춤을 배우기, 심리 검사를 하기.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자연을 느끼기 위해 자연의 소리와 질감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다. 원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약간의 더운 날, 해가 지고 있어 햇빛이 내려앉고 있는 시간이었다. 강사는 '마음대로' 움직이라고 했다. 누워있는 것도, 걷는 것도, 무엇을 만지는 것도, 자연에서 오는 모든 것을 느끼라고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촉감, 소리, 그리고 온도, 바람과 같은 것들은 눈을 감은 채로 있을 때 더 명확하게 내 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약간은 불편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자유로워졌다. 나는 이것저것을 만지며 돌아다니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연을 느끼며 신나 하거나 차분히 그것을 즐겼으며 자유로움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눈을 감았다. 춤을 6 살때부터 대학 때까지 춰왔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춤'을 추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춤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저 풀들처럼, 저 나뭇잎처럼, 두 팔을 바람에 맡겨 흔들며 여태껏 배워온 움직임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싶었다. 태아의 고동에 맞추어 움직이고 싶었고, 맨발로 뛰노는 아이의 모습처럼 움직이고 싶었고, 차분히 웃음 짓는 지금의 내 모습처럼 움직이고 싶었다.


메시아적 사고. 심리상담 때 몇 번은 들은 말이고, 오빠와의 대화에서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이 이룩한 - 냉장고, 에어컨, 작게는 컵 같은 것이나 크게는 군사 무기나 인공위성과 같은 것들까지 - 이 대단한 것이고 신비로운 것이라고, 온 우주는 나를 작디작은 존재로 만들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믿을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나는 잘하지 았았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은 맞지만 우주가 나를 관통하는 느낌, 인간이 이뤄낸 것에 대해 대단하다던지 신비롭다든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일종의 조증 삽화라고 생각되는 입원 초기의 상태에서 나는 인간이 살아갈 의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얌전해졌다. 여전히 나는 우리가 우주의 하찮은 존재이고 동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동물은 그마다의 특성과 살아가게 하는 본능이 있고, 우리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구라는 행성 속의 모든 일들은 지구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그저 인간 삶에 대 한 위협일 뿐이다. 인간은 종족의 번식과 자신의 권력 혹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한 삶뿐만이 아니라 '고등' 생물이라는 오만함과 자만심은 인간을 더욱 퇴보하게 만든다.


이것들은 다 '나'의 생각일 뿐이다. 신을 믿는 자도, 삶의 가치를 생각하는 자도, 그저 살아가는 데에 의미를 두는 자도 세상엔 갖가지 생각이 있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나뉘게 되어있다. 나는 아직 나만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조증상태와 우울 상태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생각이 바뀐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치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두의 생각이 다 다른데 어떻게 이치와 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직은 헷갈린다. 그저 나는 이 자연에 속해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자연의 모든 흐른들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대립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염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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