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새로운 차원으로

by 온이로

나는 평범하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 나는 평범함이라는 기준에 관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민해 왔다. 특이하다, 사차원이다, 이상하다, 넌 왜 그래. 나의 평범하지 않음과 평범함 사이에서 나는 그만 저울질당하고 도망치고 싶다.


평범하다고 말할 때 평범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이든 보통으로 하는 것? 이러면 또 보통은 무엇인가가 돼버리니까, 중간으로 하는 것? 메이커 옷 한두 개를 몇 개쯤 가지고 있고 절친한 친구들이 3명 정도 있으며, 아이폰을 사용하는 여자 고등학생. 평범해 보인다. 어디 나무랄 데 없이 평범의 기준으로는 완벽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다. 저런 인생을 살기 위해선 부모가 적어도 중산층은 되어야 하고 일반적인 수준의 가정에서는 저런 상황들을 만들어 주는 것에 곤란해진다. 더 빈곤한 가정에서는 저런 것들은커녕 생사를 위협받는 돈과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교사인 어머니 덕에 빈곤한 생활을 한 적은 없다. 그것이 나에게는 축복이자 절망이었다. 어머니가 용돈을 주시니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일에 대한 간절함이랄까, 그런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이 30에 무직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내가 말한 평범은 그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이기는 하다. 생각하는 것의 종류가 남들이 생각하는 차원과 다르다 하여 '사차원'이라고 불렸다. 뭐, 초등학생들은 오차원, 육차원까지도 불렀지만 그 단어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 내가 눈에 띄게 이상하다는 것. 그것은 꼬리표가 되어 나에게 붙어 다녔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사차원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여전히 특이하다는 말은 듣고 살았다. 그래도 그것으로 나를 놀리거나 비방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가끔은 사차원이 좋을 때도 있었다. '나는 남들과 달라'라는 나르시시즘적 심리에서 나온 반응이었을 것이다. 사차원이라는 별명처럼 사차원이라는 차원까지 이해해 버렸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앉았다. 다중우주나 블랙홀, 다차원에 관한 것은 어릴 때 관심이 많았다. 엄마의 과학 잡지에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읽고 어린이용 과학책을 섭렵했다. 그런 것들도 평범과 거리가 먼 행동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특이한'사람이라는 말에 별 관심이 없다. 어른이 될수록 나의 특이함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해 버릴 때의 대처법을 조금씩 터득하기도 했고, 실제로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특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특이한 나 자신의 개성과 유일함을 인정한다. 내 방식대로 옷을 입고 내 방식대로 걷고 내 방식대로 글을 쓴다. 내 방식이 곧 나이고 남들이 특이하다고 말하는 나의 정체성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