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참다가 터지니 빈도가 적다고 할 수 있다. 육아하면서 화가 나는 건 사실 아기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대부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때문이다. 그래서 육아 중 화를 내면 그 이후 폭풍처럼 밀려오는 자괴감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친정 부모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아기가 먹을 김밥을 정성 들여 만들었다. 1줄을 금방 먹길래 곧장 김밥을 더 만들었다. 아기김 크기로 1줄이니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다. 잘 먹던 아기는 갑자기 밥그릇에 있던 김밥을 휘저었고 김밥은 식탁 아래로 모조리 떨어졌다. 그러고는 뭔가 맘에 들지 않는지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화가 터졌다.
아기를 키우면 늘 겪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몸도 피곤하다 보니 더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기를 하이체어에서 훅 안아 올려 거실로 향했다. 친정엄마가 쫓아오며 자신이 볼 테니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한다. 지금 기분으로는 밥이 들어가질 않아 괜찮다고 하니, 엄마는 내게 "애가 뭘 아니 화가 나도 애기한테 화내지 마라"라고 하셨다.
아기를 의자에서 들어 올릴 때 이미 '아 이러지 않았어야 했는데'생각했지만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한 후였다.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말하려고 장난감으로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도 하나 줘"하면서 불렀다. 평소 같았으면 환하게 웃으며 탁탁탁 걸어올 텐데 요 쪼그만 게 들은 체도 안 한다. 자기도 기분이 나쁘다는 거다. 이후 몇 번이나 더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태어난 지 14개월 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기가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게 귀엽기도 하면서 같잖아서 웃음이 났다. 오늘을 계기로 나는 한번 더 마음속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해'를 새긴다.
언젠가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14개월의 너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매 순간 너의 감정을 잘 알아차려주라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감정을 묻어두는 일이 생길 텐데 그 감정을 혼자 묻어두지 말고 오늘처럼 잘 만나주라고. 혼자가 힘들다면 엄마가 함께 만나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