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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화 Jan 11. 2023

조각조각 글을 쓰자!

[그림책 <해를 쫓는 아이들> 출판 일지] #02

사각사각이 아니라 다각다각



 펜 대신 키보드로, 공책 대신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내게 글 쓰는 소리는 사각사각보다는 다각다각에 가까웠다. 매일 다각다각 글을 써오던 내게 그림책 한 권을 더 쓰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림책이 소설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림책은 노트북보다는 핸드폰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잦았다. 핸드폰 타자기로는 긴 글을 쓰기 어려우니, 가방 한켠에 처박혀있던 접이식 키보드, 삼단으로 접으면 팔꿈치보다도 얇아지는 두께의 키보드를 다시 꺼냈다.




 내 노트북은 충전기와 함께 들고 다니면 3kg이 넘었다. 이 무게가 부담이 되는 날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광주의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는 친구에게 집중할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노트북을 챙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진 후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 친구가 잠시 급한 볼 일이 생겨 나 혼자만 남게 될 때를 대비하여 글 쓸 도구를 들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했다. 공책과 펜을 들고 다니기에는 원체 악필인 데다가 나중에 글을 옮겨 적는 것도 일이었고, 아이패드를 사기에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가 접이식 키보드였다. 노트북을 내려두고 핸드폰과 접이식 키보드,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만 챙기는 날에는 썰렁해진 가방의 무게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 가벼워진 무게 때문에 그림책이 소설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소설을 쓸 때에는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 오래도록 타자기를 두드리는 습관이 들었다. 한 번 앉으면 정말 필요한 일(화장실에 가든가, 저린 손목을 스트레칭한다든가)이 아니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글이 술술 풀리는 날에는 행여 흐름이 끊길까 방문까지 잠그고 작업에 몰두했다. 글이 풀리지 않는 날에는 오늘 치의 마감을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싶어서라도 꾸역꾸역 문장들을 토해냈다. 워낙 오랜 기간의 이야기를 소설에 최대한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하루에 적어도 한 장면이나 사건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소설작업은 말 그대로 노동이었다.




 게다가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그 성향이 꽤 강해 완벽하지 않을 일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 소설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다. 장편소설의 긴 호흡을 유지하는 데에는 숙련된 기술과 요령이 필요했다. 내 경우 그날그날 컨디션과 정서에 따라 문장의 길이와 문체, 호흡이 달라졌으므로, 어디 가서 당당히 보여줄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한참 멀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멋진 글을 써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그날의 글은 내가 쓸 수 있는 글 중에 최고여야만 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강하기도 했다. 별로 길지도, 아주 화려하지도 않지만, 나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냈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기억들을 오롯이 기억하고 싶었다. 소설인 만큼 각색도, 기억인 만큼 왜곡도 있었지만, 적어도 쓰는 와중에는 최대한 진실되고자 하였다.




 진실된 기록에의 바람과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이상하게 합쳐져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글을 쓰는 데에 너무도 심각해진 나머지, 내 삶의 기쁨과 고통의 원천이 모두 글이었다. 언제 출판할지도 모를, 너무 개인적이라서 살아생전 출판을 바라기도 어려운 소설들에, 20대 중반 1년 정도를 전부 바쳤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말 기쁜 날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세상에 나보다 즐거운 작가가 있을까' 하는 감격에 잠겼고, 한없이 우울한 날에는 차근차근 안정적인 직장과 연인을 만들며 더 긴 일생을 성실히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글이 세상 제일 쓸모없는 창작물 중 하나라고 여겨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디지털이 발달하여 환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용지와 잉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펜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하튼 나는 내 글을 너무도 애정한 나머지, 그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극성맞은 부모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자식을 소홀히 방치하거나 편하게 대하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정을 쏟는 대상과 애정을 쏟지 않는 대상에게 보이는 태도의 차이가 극명한 내게 나의 소설과 나의 그림책 또한 애정의 정도가 꽤 달랐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소설은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나의 이야기였고, 그림책은 영감에 의해서 주어진, 나에 의해서 적히기만 하면 되는, 나의 소유는 아닌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그림책을 쓸 때의 나는 소설을 쓸 때의 나만큼 무겁지 않았다. 그만큼 생각을 하지도, 머리를 쥐어뜯지도 않았다. 마치 노트북과 핸드폰의 무게만큼의 차이라고 할까. 나는 접이식 키보드와 핸드폰을 켜놓고 아무 데서나 조각조각 글을 썼다. 어렴풋이 가늠해봐도 하루에 한 인물만 만나도 한 달 정도면 완성이 될 분량이었다. 한 인물을 만나는 데에는 A4용지 한두 장을 조금 넘는 정도의 글만 쓰면 되었다. 즉 하루에 써야 하는 그림책의 글은 평균 A4용지 한 장 정도였다. 소설처럼 구체적인 묘사나 꼬아서 음미해야 하는 대사, 나중에 회수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삽입해야 하는 복선도 거의 없었다. 나는 한 치의 스트레스 없이,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그 애매한 틈에도 조각글을 써내었다.




다각다각이 아니라 조각조각




 엄마아빠의 밭에 놀러가 조금씩 뿌려지는 씨앗을 바라보며 플라스틱 탁상 위에서도 조각조각 글을 적었다. 노트북도, 와이파이도 필요 없었다. 핸드폰 메모장과 오타가 자주 나지만 작동은 잘 되는 작은 키보드만 있으면 되었다. 간간이 글을 쓰는 내 곁을 엄마아빠가 서성거렸다. 하지만 우리 엄마아빠는 생각보다 내 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신들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 당장 밭에 어떤 식물을 심고 어떤 비료를 뿌릴지 등의 문제가 훨씬 중요했다. 덕분에 나는 쑥스러워 핸드폰 화면을 가리는 귀찮은 몸짓(핸드폰이야 한 손바닥으로도 폭 가릴 수 있지만) 없이 시골 텃밭의 풍정과 여유로움도 그림책 한 켠에 놓아둘 수 있었다.




 물론 소설을 쓸 때에는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림책은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통로인 동시에, 내가 나 자신을 그리 열심히 반성하고 사색하지 않아도 나오는 이야기였다. 비유하자면, 소설을 쓸 때의 나는 정장을 갖춰 입은 채 과일바구니를 들고 한옥집 앞에서 연인의 부모님을 기다리는 새신랑 같았고, 그림책을 쓸 때의 나는 주말 연휴, 자다가 일어나 배를 긁으며 금요일 밤에 시켜놓은 치킨을 전자레인지에 대충 돌려서 김빠진 콜라와 함께 우적우적 씹어 먹는 아줌마 같았다. 후자의 경우 훨씬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온 시간과 경험만 두고 보면 전자보다 어느 면에서든 능숙하다.




 어쩌면 약 1년이 넘도록 필사적으로 글을 써오던 나날들이 있었기에 그림책이 훨씬 쉽게 적혔을 것이다. 글을 써 버릇하지 않던 내가 그림책을 창작했다면, 나는 아마 글에 얼마만큼의 힘과 무게를 줘야 할지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소 힘을 뺀 채 그림이 뛰어놀 여백을 충분히 마련해두는 대신, 글로 모든 걸 다 풀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림책의 특성상 당연히 지녀야 할 천진함과 즐거움, 가벼움을 전부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다행이게도 힘주고 쓰다가 기력을 다 빨린 먼저의 글이 있어서, 그림책만큼은 스트레스 없이 적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정신적 에너지는 한정적이라서 여러가지 일에 공평한 힘을 주기는 쉽지 않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그림책에서 한 풀 기가 꺾인 채 고개를 숙였다.




 조각조각. 카페의 한구석에서, 텃밭의 농막 안에서, 친척모임 날 친척 집에서, 자다 깬 도서관에서, 한 장면 한 장면씩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글은 전부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림작가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 작업을 3년이나 넘게 끌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힘을 빼고 쓴 글이 더 매력적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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