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해를 쫓는 아이들> 출판 일지] #11
펀딩을 오픈할 2월 초, 표지 디자인은 이미 나왔지만, 내지 편집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아직 7장 내외의 그림도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이유를 핑계 삼아 가장 공들여야 할, 그래서 하기도 전부터 압박감이 밀려오는 내지 편집 작업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뤘다. 무엇보다 막막한 것은 내가 내지 편집 프로그램 '인디자인'에 대해 아주 초보적인 지식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 초보적인 지식에는 '책을 제본하면 안쪽 페이지가 먹히기 때문에 안쪽 여백은 바깥쪽 여백보다 넓어야 한다'는 단순한 정보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은 3분 만에 배울 수 있는, '텍스트와 그림을 삽입하는 방법' 뿐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새로운 프로그램 배우기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상 꾸역꾸역 작업을 시작해보니 내게 필요한 기술은 딱 저 정도 - 텍스트와 그림을 삽입하는 기술 정도였다. 남은 문제는 '간지나 소제목 등 내지의 소소한 디자인, 그리고 글과 그림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이 문제들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결되었다. 서문, 목차, 간지 등은 디자이너님께 맡겼으므로 완성된 이미지를 삽입만 하면 되었다. 여기에도 그림을 삽입하는 기술만이 필요했다. 글과 그림을 어떻게 조화롭게 배치하는가의 문제에는 오직 나의 감과 나의 감을 보충해줄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만 필요했다. 교정가님이 성실히 교정한 원고를 적당히 배치한 후에 그림작가님과 디자이너님께 피드백을 부탁했다. 그림 속에 글을 넣는 페이지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그림작가님의 피드백이나 어떤 장은 글자가 하얀 편이 낫겠다는 디자이너님의 피드백을 받아 텍스트를 따로 빼서 배치하였다. 여기에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텍스트를 삽입하는 기술 뿐이었다.
내지 편집 자체는 생각만큼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굳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꼽자면, 작업 착수 전 나의 걱정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아예 낯선 프로그램 툴로, 내가 처음 구상한 책의 분위기를 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또다른 기술자를 고용하나 등 나의 기우만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걱정이 그러하듯, 막상 작업에 돌입하자 다음 그림들이 빨리 완성되어 하루 빨리 내지편집본을 인쇄해보고 싶을 정도로 작업에 즐거움이 붙었다. 이 단순 반복 작업이 잡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고요히 만드는 데에 꽤나 효과 좋은 명상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들이라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전부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책의 품질을 위해 평소 내 성격대로 사소한 부분들을 그저 지나쳐갈 수만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사소한 과정들은 그림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결국엔 처리해내고야 마는 성격 덕에 일은 어찌저찌 마무리가 되어갔다. 이외에도 필요한 일들은 세세하게 신경 쓸 부분이 많아 번거로울 뿐, 절대 어렵지는 않았다. 사업자등록도, 출판사 신고도, isbn 발급도, 인쇄소와 배본소를 찾아 가제본과 굿즈를 만드는 것도. 숱한 인터넷 검색과 제주에서 서울로의 장거리 이동 등의 노력은 요구되었지만, 그림작가와 디자이너를 찾아 헤맸던 단계와 비교하면 극히 단순했다.
아이디어가 있지만 기회와 인연이 없어 작업의 진척을 이루지 못했던 시기에 비하면, 사소한 부분들을 조금만 신경쓰면 착실히 작업이 진행되는 지금 이 순간은 감사하다 못해 감격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니 나는 창의성을 발휘하고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초반 작업 단계에 비하면, 기술적이고 기계적이며, 너무나 사소하여 가끔씩은 짜증까지 나는 이 모든 단계들, 그럼에도 출판에 필수적인 작은 단계들을 착실히 밟아나갔다. 머리와 몸뚱이를 바삐 움직이면 충분히 해결될 유형의 문제들이란 얼마나 단순한지. 어쩌면 과거 오랜 기다림과 작업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 더 성숙해졌구나, 자주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나날의 사소한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겸손함과 인내심 또한 함께 길러지는 것을 생생히 느끼면서.
그간 당연히 여겼던 손길들을
알아차린 순간들
펀딩 마감 3일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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