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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Nov 02. 2020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덕후이기에

생채기를 내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아

22살의 겨울,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한 배우가 루머에 휩싸였다. 의혹이 모두 그러하듯, 시작은 작은 커뮤니티였다. 과거 그가 올린 사진과 글을 '그들의 방식'으로 해석해 재편집했고, 이후 해당 이미지는 대형 커뮤니티로 옮겨져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특정 집단'이 되어버렸다. 당시 나는 밤을 지새우며 그 배우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힘썼다. 단순 '의혹' 만이 적힌 기사들 댓글들에 일일이 비추천을 누르며 반박했다. 나에겐 그 방식이 최선이었다.


"내가 잘 아는데,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에요" 식의 댓글들은 그들에게 '씨알'도 안 먹히는 듯했다. 이미 그들의 눈 밖에 난 그 배우는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고, 루머가 퍼지지 않길 기도했던 젊은 시절의 나는 덕질의 허탈함과, 사람들에게 대한 증오심이 생겼다. 어떻게 사람이 꼬이면, 사람에게 상처를 내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을까.


4년이 지난 지금, 난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글을 쓰는 기자가 되어버렸고 22살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는 잔인한 사람이 됐다. 그 힘들었던 겨울을 기억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글자와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선물, 쓰면서 이 단어의 사용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아마 4년 전, 내가 좋아했던 배우의 기사를 썼던 기자 역시 누군가의 덕후였으리라. 하지만 기자가 되어보니, 그런 기사를 썼던 그 사람의 심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조회수와 클릭수가 생존과 직결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보니, 한 사람에게 생채기를 내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사랑하는 다수를 향해 저지르는 일임을 앎에도 "지금은 내가 살아야 되니까"가 우선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을 한 번 찌르는 데에 100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평소의 삶을 살며 50만큼의 용기를 갖고 있었던 나는, 살기 위해 100만큼의 용기를 냈고 기사를 쓴 뒤 "내가 누군가에게 글로 상처를 냈다"라는 50만큼의 불안감을 참아내야 했다. 하지만, 200 정도의 용기를 요구하는 시스템 속에서 사람은 무섭도록 적응한다. 나는 50을 더한, 150의 용기를 갖게 됐고 100만큼의 용기로 상처를 내는 행동들은 자연스럽게 무뎌졌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근거 없는 자료들이 기사화되고, 해당 소속사 측은 공식입장을 낸다. 기사화가 된 뒤, 포털 사이트에 해당 연예인의 이름이 상위에 노출되며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 시스템 속에서 나는 멀쩡했던 한 사람이 자살기도를 하고, 잘 나갔던 사람이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들을 지켜봤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참이던 거짓이든 커뮤니티를 통해 글을 쓰는 사람이 시발점이겠지만 그걸 부풀려 크게 만드는 일은 기자가 일조한 것은 사실 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이 아니라면 해명 기사를 쓰는 사람도 기자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해명은 '씨알'도 안 먹힌다. 혹은 '아님 말고' 식으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모두 조회수로 느껴진다.


연예인들과 관련된 이슈는 한 달 안에만 여러 개가 쏟아진다. 그중 내가 사랑하는 그 배우가, 그 아이돌이 아니라는 법이 있을까. 아마 당신에게 기사로 생채기를 낸 기자도 누군가의 덕후이자, 생채기로 상처를 받아봤던 사람이 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만큼의 상처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써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일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글의 양면성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글은 누구를 살리기도 하지만, 누구를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 누구를 알리기도 하지만, 누구를 영영 브라운관 밖으로 밀어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약이 되기도, 독이 묻은 칼이 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글의 무거움을 깨달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다.


재기를 꿈꾸며 예능에 출연한 한 연예인이 과거에 잘못했던 짓을 써야만 했을 때, 이혼 가정에서 자라 '이혼'과 '재혼'이 얼마나 개인에게 상처가 되는 과거 인지도 아는 내가 딸과 엄마가 출연한 프로그램에 그러한 기사를 썼어야만 했을 때, 한 아이돌의 공개 열애가 팬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앎에도 꾸준히 상관도 없는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붙일 때 등. 수많은 자괴감이 들었던 순간들 속에 나는 늘 불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쉽게 쓰인 자극적인 기사에 쏟아지는 조회수를 보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일을 적는 글인데 뭐가 문제인가"라며 합리화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쓴 내가 잘못이 아닌 관심을 갖는 그들이 문제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 것이다. 그렇게 무뎌지고, 합리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의 도덕적 잣대와 함께 '나 자신'을 잃었다. 수십 번의 가치 충돌을 겪어 낸 뒤 든 생각은 "이 일, 그만해야겠다"였다.


4년 전, 한 기자가 나에게 냈던 생채기의 잔상을 떠올려본다. 밤을 지새우며, 마치 내가 루머에 휩싸인 사람인 양 잠을 뒤척이며 눈물을 흘려댔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덕후가 된다는 건 그런 일이니까. 누구보다 그 사람에게 이입하며, '내가 대신 이 상처를 감당하겠다'는 방탄조끼와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내가 생각한 '덕질'이었다.


그 기자에게 전화를 하고, 소속사에게 메일을 보냈더랬다. "지워주세요", "강경 대응해주세요" 따위의 말을 전하며 내 일처럼 생각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그 절실함을. 그리고 4년 뒤, 일반인부터 시작해 팬들의 그런 전화와 메일을 받으며 "내용에 문제없어서, 삭제는 안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내 대답을 들은 그 사람이 방구석에 앉아, 각 종 매체에 전화를 돌리고 있을 상황을 그려본다. "안 된다"는 대답을 들을 그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절망과 우울감에 휩싸인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 과거의 내가 생각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는 일은 누구보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면서 그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쉽게 칼을 들며 정곡을 찔러대는 일이 무뎌지는 나의 이중성이 유난히 싫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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