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초록색으로 변한 신호등이 번쩍 거린다.
시간은 10초가 남았다. 뛸 것인가, 말 것인가?
생각해보면 살면서 그러한 순간이 올 때마다, 내 옆의 사람은 수십 번 바뀌었다. 그 사람들 중, 그냥 "야 뛰자"라고 말하며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 그냥 기다렸다가자"라고 말하며 내 팔을 붙잡는 사람도 있었다.
문득, 그렇게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다. 물론 난 아주아주 '기다렸다가는' 후자다. 문득, 혼자 중학교 모교 앞의 신호등을 건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12년 전엔 없었던 입구에 붙어있는 정 없는 'QR코드'를 보며, '이런 날도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은 건 덤.
저마다 가진 인생의 속도인가, 속도를 신호등에 비유하는 것은 뜬금없나?
서두를 것 없는 사람들은 빨간 신호가 곧 다시 초록색 신호로 바뀔 것을 알기에 약 2분 간의 기다림과 숨 가쁨을 맞바꾼다. 숨 가쁨 뿐만 아니라, 그 2분간의 시간을 '잃어도 좋다'는 무언의 사인을 보낸다.
하지만, "달리는 것이 더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잠깐의 '초록색'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또 한 번, 기회가 올 것을 앎에도 자신의 다리와 숨 가쁨을 기꺼이 희생한다.
난 그런 사람들이 참 피곤했다. 정말로. 굳이 이런 상황에서 뛰어가야 하나? 인생에 날숨 뱉는 것에는 인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참 신호등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특이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