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은 위기 때 형성된다. 점심을 거른 채 밖에 나가서 걷다가 왔다. 자전거를 타려고 하다가 걸을 만해서 몇 발자국 뗐다. 5천보를 채웠다. 오른발이 성치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파스를 붙였는데 효과가 있나보다. 몸은 둔하고 마음은 무겁다. 무엇으로 돌파할 것인가. ‘기질은 위기 때 형성된다’던 잡스의 말을 되새긴다. 나는 지금을 위기로 규정한다. 견뎌내야 한다. 버텨내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절제하자. 본질에 집중하자.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핵심만 남기고 곁가지는 모두 쳐내자.
아내가 싸준 키위와 사과를 이제야 먹는다. 차를 우려내면서 과일을 열었다. 하나씩 시작하자. 뭔가 잘 안 풀릴 때는 하나에 집중하겠다. 뜨거운 물을 우려내 차를 마시자. 마음을 가라앉히자. 정신을 일깨우자. 바탕화면의 너저분한 파일을 정리하고 사내교육 대상도서를 쭉 훑자. 돌파구는 언제나 책과 글이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행태을 책으로 곁눈질하자. 유튜브에 의존해서 흥미만 좇다가는 내 삶이 얕아질 것이다. 다시 나를 일깨운다. 과일을 다 먹은 후 데스크톱을 켤 것이다. 정신의 힘을 날카롭게 벼릴 것이다.
다시 글이다. 다시 아침이다. 한 주간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백지 앞에 앉았다. 캐나다에 다녀와서 열흘 이상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축구를 하다가 작은 부상을 입어서 더욱 우울했다. 원고도 2회 연속 재사용했다. <일상이 산티아고>와 <이란표류기>에 실린 글을 다듬어서 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아침 외국어수업도 미룬 날이 많았다. 루틴이 흔들렸다. 미국생활 1년 7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런저런 실험을 했지만 가장 강력한 루틴은 아침 스타벅스다. 흔들리지 말고 확신을 갖자. 쭉 밀고나가자. 계속 고민하기에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남대에서> 편지를 다시 꺼내서 읽어본다. 호시우행!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 호랑이의 눈으로 보고 소의 걸음으로 묵묵하게 걷는다. 호시우행이다. 순간순간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할 일을 하자.
아버지의 편지를 꺼내읽고 눈물을 흘린다.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께서 남긴 편지가 생각난다. 어쩌면 아버지는 나보다 나를 잘 알고 계셨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정신력을 강조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번의 어려움 고비도 일어난다. 그때마다 잘 대처할 수 있는 의지, 정신력, 너만의 독특한 인성을 만들어 놓으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유언이 되었다. 곧 있으면 아버지 제사다. 4주기를 맞는다. 돌아가신 지 벌써 4년이 되었구나. 아버지 돌아가시고 회사를 대략 1년은 쉬었고 1.5년은 홍보실에서 맘껏 일했다. 미국에 온 지도 1.5년이 넘었다. 이제는 도약해야 할 시기다. 하루키 말대로 정신적 탈바꿈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겠다. 정면승부하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호시우행하겠다.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겠다. 꿈에서 상인의 현실감각과 서생의 문제의식을 떠올렸다. 내가 가진 문제의식도 현실을 토대로 발현돼야 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되뇌었다. “나를 다시금 일깨워야 한다.” “나는 나를 일깨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