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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증명

by 김삶

다시 커피숍에 왔다. 스타벅스 지정석에 앉았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아침에 얼마나 일찍 일어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아침을 얼마나 일관되게 시작하느냐가 하루의 질을 결정한다. 아침을 깨우는 5가지 의식을 빠뜨리지 않겠다. 이불정리, 걸으며 명상, 블랙커피 마시기, 일기 쓰기, 한가지 동작 반복까지 다섯 가지다. 이영표는 “월드컵은 경험하는 곳이 아니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고 했다. 이제 나도 경험의 시간은 지났다. 반환점을 돌았으므로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증명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경험이 아닌 증명의 길을 간다. 다시 김훈을 떠올린다. 누가 날 욕한다고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나를 칭찬한다고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로 살겠다. (촬영: 김삶)

관습적인 일기를 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2주 연속 원고를 확보하지 못해서 그동안 썼던 일기를 뒤졌다. 쓸 만한 내용이 없었다. 공개하기에는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였다. 일기에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하나에 대해서 쓰자. 한 가지에 대해서 파고들자. 전날 느꼈던 일이나 걸으면서 생각한 일에 대해 깊이 들어가자. 어제는 <알고 있다는 착각>을 회사에서 보고 전자책을 샀다. 원제는 <인류학적 시각(Anthro Vision)>이었다. 우리말 번역을 적절히 했다. 특히 벌레의 눈을 다룬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나 역시 KDI나라경제에 <벌레의 눈으로 본 혁신>을 기고했다. 원고가 쌓이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나 자신의 성과를 스스로 인정하자. 동시에 자기갱신을 끊임없이 시도하자.


혁신가는 매일 자기갱신에 성공하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따라서 나는 내 삶의 혁신가다. 오늘도 아침루틴에 성공했다. 일어나서 이불을 갰다. 걸어서 스타벅스에 왔다. 오는 도중에 <민물장어의 꿈>을 떠올렸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비우고 버리는 삶의 방향을 택했다. 쌓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삶을 연습해야 한다. 덧붙이는 게 아니라 깎고 잘라서 본질만 남겨야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쓴 글을 <일상이 산티아고>와 연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매일 쓴 글이니까 이는 걷기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이 산티아고, 매일이 실리콘밸리>라는 제목은 어떨까? 산티아고 책을 갖고 와서 지금, 여기와 연결하는 작업을 구상한다.


평일 아침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시간이다. 진득하게 작업할 수 없다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주말 아침에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일주일을 운용할 수 있다. 떠오르는 것을 글로 남기자. 그리고 연결하자. “Connecting the dots”라고 했다. 어쩌면 이 방식이 통할지도 모른다. 아직 설익었다고 단정하지 말자. 내가 지금껏 쌓은 글에 연결점이 있을지 모른다. 산티아고와 서울과 실리콘밸리를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해보자. 이어질 수 있다. 가제를 <일상이 산티아고, 매일이 실리콘밸리>로 잡고 자기혁신에 대한 여정을 정리해보자. 할 수 있다. 산티아고, 서울, 실리콘밸리는 충분히 매력적인 시공간의 이동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 자신감을 갖자. 시장에 나를 드러내고 주기적으로 반응을 살피자. 나는 무대가 필요한 사람이다. KQED에서도 곧 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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