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지를 대면한다. 관행적인 일기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각성하면서 글자를 적어내려 간다. 가슴에 작은 돌덩이 하나가 생겼다. 필 나이트가 말한 오리건(Oregon) 정신을 떠올리며 미래를 낙관한다. 비관적인 생각을 버린다.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이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만큼 요며칠 내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면승부하겠다. 새벽에 잠자리에서 만트라를 되뇌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낼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생활 초창기 힘들었던 때에 무수히 떠올렸던 슬로건이다. 이마저 긍정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존 창업자의 정신을 연결하겠다. 첫날 정신이다. 데이원이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자세를 바로잡는다.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도 소재로 삼을 생각이다. 스티브 잡스의 결혼식 사회를 본 선사다. 그는 말했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많지만,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습니다.”
양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지만 조금 더 적어내려간다. 책을 쓰려는 사람의 마음을 가다듬는다. 일관된 하나의 큰 뜻을 지속하려는 생각에 집중한다. 단행본을 내려면 커다란 줄기가 있어야 한다. 나의 관심사는 정신적 측면이다. 문화적 측면이다. 사회적 측면이다. 정치적 측면이다. 실리콘밸리의 경제를 제외한 정신, 문화, 사회를 모두 다루겠다. <벌레의 눈으로 본 실리콘밸리>다. 새가 아니라 한 마리 벌레가 되어 떨어진 이 공간의 이질성을 다루겠다. 걸어서 실리콘밸리 속으로 들어가고, 실리콘밸리 기업의 슬로건이 갖는 의미를 살핀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로 남은 기업가들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엿본다. 마무리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정신을 탑재하고 삶을 영위하겠다는 나의 의지에 대해서 쓴다. 그저그런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다행히 소설가 장강명은 쓰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독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쓰는 사람은 독선적이다. 나의 독선을 쓰는 공간에서 마음껏 펼치겠다. 해방구가 될 것이다.
한 문단이라도 쓰기 위해 백지 위에 선다. 목요일이다. 9월의 첫날이다. 방황했던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며칠 있으면 아버지 제사다. 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정신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나아간다. 필 나이트가 말한 오리건(Oregon) 정신을 떠올린다. 현재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미래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다. 어제는 앤서니 드멜로의 <깨어나십시오>의 일화를 떠올렸다. 학교에 가기 싫은 아들이 잠자리에서 투정한다. “첫째 학교는 너무 시시하고 둘째 아이들이 너무 성가시고 셋째 저는 학교가 너무 싫어요.” 아버지가 대답한다. “네가 학교에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를 말해주마. 첫째 그건 네 의무이고 둘째 네 나이가 마흔다섯이고 셋째 넌 교장이기 때문이란다.” 드멜로 신부는 깨어나라고 말한다. 깨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누구도 깨워주지 못한다. 깨어나야 한다. 나를 매일 새롭게 한다면 깨어날 수 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겠다.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삶을 살겠다.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