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리고 쓴다. 이번 편은 <실리콘밸리는 어디일까>다. 올해 3월로 기억한다. 해외시장뉴스에 올리던 글이 우여곡절을 겪고 미주한국일보에 실렸다. 그 글을 6개월이 지나 브런치에 올린다. 반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글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기는 있어야 한다고 동시에 생각한다. 브런치북을 만들어 10회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것이다. 미국생활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치르는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실리콘밸리 근무가 중반부를 넘어서 후반부로 가고 있다. 내년이 되면 후반부에서 종반부로 간다는 느낌이 확 다가올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쓴다. 쓰고 또 쓴다.
후배에게 <나는 걷는다>를 선물했다. 잊고있던 책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책 표지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부제 혹은 슬로건이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이다. 1099일이라는 숫자를 접하고 나의 미국생활을 점검한다. 나는 여기서 1095일을 묵고 간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터키에서 시작해 중국까지 오는 여정과 비슷한 시간이다. 오늘이 때마침 601일차다. 600일이 지났다. 600대로 접어들었다. 나는 멈춰서 있으려던 나를 타파해야 한다.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공백과 방황의 기간을 지나 태세를 바로잡아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나는 600일을 기점으로 다시 태세를 바로잡겠다. 나는 미국에 와서 600일을 보냈다. 50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난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적다. 그렇게에 스스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정면돌파를 해보겠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올리비에가 길 위에서 <나는 걷는다>고 했다면 나는 미국에서 <나는 해낸다>로 이름 붙이겠다. 나는 지금, 여기서 나의 존재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인간과 문화의 시각으로 실리콘밸리를 보기 위해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 아침일기를 꾸준히 밀고 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가야할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서 쓴다. 마음이 무겁지만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나는 일어설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맡긴다. 그래도 삶의 리듬을 타려는 노력은 계속하자. 다시금 찬란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나의 불만족은 절대적인 나의 기준과 내면에서 온다. 남과 비교해서는 그럭저럭 잘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준에 불충분한 걸까. 나 자신에 대한 충조평판을 멈춰보자. 충조평판은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총고, 조언, 평가, 판단을 의미한다. 이를 멈춰보자. 나의 일상과 루틴을 쭉 밀고나가는 것이다. 한 달에 두 번씩 신문에 글을 낼 수 있는 이는 없다.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소리라도 한 번 크게 지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간만에 마음을 적셨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낼 수 있다. 오늘은 내 삶의 리듬을 회복할 것이다. 미국생활 601일 차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