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대한항공 KE091편 44G 좌석에서 쓴다. 미국 서부시각으로 30일 월요일 오전 9시 25분을 지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는 이미 다음날 새벽 1시가 넘었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식사를 했고 바로 잠에 빠졌다. 몇 시간 잤을까? 입 안이 텁텁해 화장실에 가서 양치를 하고 왔다. 애써 씽크패드를 꺼냈고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쓰는 사람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작년 1월 28일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대한항공에서 썼던 나의 다짐을 생각한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박경리가 <토지> 서문에 쓴 물음을 인용하며 미국생활을 시작하는 나의 각오를 다졌다.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심정적으로 물리적으로 반환점을 돌고 있다.
6월은 재빠르게 흘러갈 것이고 7월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떠나야 한다. 그러다 보면 1년 반이 넘어간다. 8월을 어물어물 보내면 하반기로 접어들고 2022년도 금세 저물 것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바쁘게 보내며 시간을 아껴쓰려 한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1분 1초를 쪼개쓴 것처럼 말이다. 미국생활 첫 1년은 적응기였다. 한 바퀴를 돌 필요가 있었고 제 나름 투박하게 시간을 보냈다. 올해부터 나는 도약을 준비했다. 실리콘밸리를 걸어서 일주했다. 1분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위기를 잘 넘겼다. 4월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미국에 왔고 5월에는 내가 한국에 들어왔다. 전미투어를 했고 전국여행을 했다. 10, 20, 30 작전을 무사히 수행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지독함을 느꼈다.
태평양을 지나며 나의 한국출장을 정리한다. 한국시간 기준이다. 일요일 새벽에 인천에 도착해서 호텔로 갔다. 여장을 풀고 공항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호텔로 돌아와서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인천시내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는 길에 부탁받은 콘택트렌즈도 샀다. 호텔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후배를 만났다. 손흥민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두 골을 기록하는 장면을 대화에 얹었다. 다음날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인천공항 1층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공항철도를 타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양재로 와서 호텔 체크인을 하고 따릉이를 타고 건대입구 쪽으로 갔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족발을 먹고 2차로 선술집에 갔다. 카스를 많이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화요일은 호텔에서 회의를 했다. 아침에는 시간이 좀 남아서 따릉이를 타고 내곡도서관까지 갔다. 픽사(Pixar)를 다룬 책을 빌렸다. 회의가 끝나고 술을 마시고 KTX로 강릉에 갔다. 수요일은 오전에 사우나를 하고 대학 설명회 일정을 소화했다. 저녁에는 동료들한테 식사를 대접했다. 목요일은 청주 일정을 진행했다. 하루종일 차를 탔다. 금요일은 아침에 치과를 갔고 점심에 파주를 들렀다. 저녁에는 대학교 동기들을 만났다. 센트럴시티에서 노숙자처럼 눈을 붙였고 토요일 첫차로 강릉에 왔다. 원주에 가서 누나를 태워 조카를 만났다. 자전거를 샀다. 일요일은 아버지 산소에 갔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갔고 저녁은 축구를 봤다. 월요일은 출국하느라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