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부룩한 속을 가누고 쓴다. 어제 미네타 산호세 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내가 데리러 나왔고 짐을 챙겨 운전해서 왔다. 자동차 뒷바퀴에는 커다란 못이 박혀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오늘 코스트코에서 가서 못을 빼고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해야겠다. 짐을 풀고 씻었다.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맥주를 두 병 마셨고 족발도 해치웠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후회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욕구를 절제해야겠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으므로 본격적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해야겠다. 도착한 첫날부터 아침루틴을 적용하고 있다. 5시 30분쯤 눈을 떴고 가방을 챙겨서 스타벅스로 향했다. 한 주간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나는 씽크패드를 켜고 아침일기를 쓰고 있다.
반환점을 돌았다. 미국생활은 이렇게 한바퀴 더 돌면 끝날 것이다. 정중동이라고 했다. 차분한 가운데 분주하게 움직이고 싶다. 나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겠다. 나는 나아간다. 많은 책을 가져왔다. 적잖은 책을 가져갔다. 책 욕심이 많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산호세로 오는 비행기에서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를 훑었다. 관찰자 시점에서 사진기와 녹음기가 되겠다는 하루키의 접근법에 공감한다. 일상에서 비일상성을 찾아내고 비일상에서 일상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여행자의 마음을 잊지 말자. 늘 여행하듯이 살자. 사무실의 좁은 내 방에서도 세계와 지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쓰고 왔지만 계획한 일이라 의연하게 받아들이겠다. 내년까지 한국에 돌아갈 기회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현지에 녹아들어야 하고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마이클 조단의 잡지를 봤다. 미국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90년대 NBA와 90년대 힙합. 미국문화를 접하면서 살아온 내게 90년대 미국스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잡지 특별판을 보면서 느꼈다. 내가 경유를 결정한 까닭은 새로운 자극을 받기 위해서다. 몸은 고생하지만 어차피 지점과 지점을 이동해야 한다면 낯선 곳을 거쳐서 가고 싶다. 인천으로 가는 길에는 LAX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짧기도 했고 여유도 없었다. 인천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LAX 밖으로 나갔다. 공항 주변을 걸어서 스타벅스로 갔다.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여독을 풀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시차가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연착륙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공항으로 오는 길은 무료 셔틀버스를 탔다. 무사히 돌아왔다.
반환점을 돈 지금 남은 기간 하고픈 일이 많다. 맥주 마스터 과정도 본격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고향에서 펼칠 맥주사업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내 이름을 건 맥주가 대한민국과 세계에 유통될 날이 올 것이다. 나의 맥주는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이며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 가치와 의미를 확보하기 위한 나날로 남은 미국생활을 꾸려가겠다. 속은 여전히 더부룩하다. 위기가 기회다. 현재를 다이어트의 계기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