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글의 지배와 나의 종속

by 김삶

생각을 정리하다가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놀다가 글쓸 시간을 내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10시쯤 눈을 감아서 6시에 일어났으니까 8시간을 연속으로 쭉 잤다.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다. 기계적으로 쓰는 아침일기도 중요하겠지만 아침을 얼마나 일관되게 시작하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일기를 이어서 쓴다. 글쓰기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싶다. 꾸준하게 쓰는 수밖에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에 일어나 쓰지 못할 수십 가지 이유를 찾겠지만 써야할 한 가지 까닭 때문에 쓴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꽂힌 하나로 자신을 완성하려는 자세에 예술의 본질이 있다. 그 이유 하나로 밀어붙인다. 나는 내 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를 갈구한다. 미국생활에서 글쓰기의 수준을 끌어올리려 한다.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매일 써야 한다. 매일 쓰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매일 쓰는 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장(長)이 없어서 쉬엄쉬엄했다. 점심 때는 오랜만에 혼자 버거킹에 걸어갔다. 내가 발굴한 개구멍(?)이 막혀 있었다. 아쉽지만 먼 길로 돌아가야 했다. 괜찮았다. 가는 길에는 경찰 두 명에게 뭔가 설명하고 있는 아시아계 사람을 봤다. 아마 사고를 당하지 않았나 짐작한다. 버거킹에서는 최소한의 돈을 써서 점심을 해결했다. 퍼크스(Perks) 쿠폰을 써서 치킨너겟 4조각을 샀고 감자튀김 대짜를 받았다. 1달러가 들었다. 세금을 포함하면 1달러 9센트다. 음료를 시키려고 버거킹 앱을 열었더니 음료가 최소 1.59달러였다. 카운터에서 시키면 16온스 프로즌(Frozen)이 1달러였다. 1달러짜리 딸기맛 프로즌을 시키고 포인트를 적립했다. 총 2달러 18센트에 치킨너겟, 감자튀김, 프로즌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과달루페 강둑을 따라서 사무실로 걸어오니 만보계에는 11,500보가 찍혔다.

어둠 속 달을 본다. 하늘에는 별이 떠 있다. 나는 자율을 지향한다. 구글에만 의존해 살지 않겠다. 구글을 배제한 삶은 어둡겠지만 내 맘에는 달과 별의 빛이 있다. (촬영: 김삶)

버거킹을 오가는 길에 헤럴드경제 원고를 생각했다. 금문교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제목은 오래 생각해놨던 대로 “희망이 있다(There is hope)”가 될 것이다. 묘사로 시작하고 싶다. 바트(BART) 열차를 타고 자전거를 묶어놓은 채 샌프란시스코를 갔던 일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어쩌면 기술을 주체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에 대해서 써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구글에 결정을 위탁하지 않은 삶을 살려는 자세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제목은 “자율보행자”다. 자유의지에 대해서 쓰고 싶다. 의외성에 대해서 쓰고 싶다. <실리콘밸리의 자율보행자>는 어떨까? 구글에 위탁한 내 기록을 지우는 경험으로 1700자 칼럼을 시작하겠다. 자율주행은 어쩌면 기술과 기기에 나의 의지를 위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실리콘밸리의 역설에 대해 쓰겠다. 나의 강점을 살리겠다. 그게 ‘글로벌 인사이트’의 의도다. 구글은 별칭 그대로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신이 된 인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구글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구글의 지배와 나의 종속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은 전화기를 놓고 집을 나서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은 너의 날: 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