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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삶의 방향성

by 김삶

금요일이다. 길었던 한 주를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이리도 자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다. 나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고 아버지의 혼을 담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 속에 존재한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정신을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남긴 가치를 내 삶에서 구현하겠다. 나는 나이자 나의 아버지다.


빌 클린턴은 <마이 라이프>에서 서구문명의 개혁과 갱신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요지를 미래선호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나는 내 삶의 개혁과 갱신을 추구한다. 나는 내 삶의 개혁과 갱신을 어떻게 지속해나갈 것인가. 아침일기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매일 아침 나를 갱신하기 위해 쓴다. 쓰면서 나의 존재를 자각한다. 하루키가 말한 존재의 수준기라 생각해도 좋다. 나는 커다란 생각과 세밀한 근거없이 내 이메일 주소를 renew로 바꿨다. 미국생활 1년 반이 지난 지금, 돌이키면 적잖은 의미가 있다. 매순간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 이게 스티브 잡스가 꽂혔다는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Zen’s Mind Beginner’s Mind)'의 핵심일지 모른다. 순류의 말을 인용한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습니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 안다거나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비법입니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되새기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나가는 것. 그것만이 개혁과 갱신을 지속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될 수 있다. 내 근거를 탄탄히 하기 위해 권위에 기댄다. 이번에는 정혜신 박사의 말을 인용하겠다. “무너지면 풀썩 주저앉게 되잖나. ‘내가 알았던 게 아니구나, 아무것도 아니구나.’ 근데 그것이 삶이다. 조금 잘되다가도 다시 떨어지고, 그렇게 뭉개다가도 다시 나아가고. 지옥이 일상이고, 일상이 지옥이라는 걸 순하게 받아들이면서 죽는 날까지 수백, 수천, 수만번 무너지는 게 삶이다. 깨달음을 얻는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것은 가짜다.”

UC버클리에는 <혁명서점>이 있다. 사상·이념적 진보에 대한 책이 많다. 난 동태적 관점의 진보를 떠올린다. 유동하는 삶에 방향성을 부여해야 한다. 나를 혁명하자. (촬영: 김삶)

아침 외국어수업 2회를 마무리한 내게는 10분이 남았다. 집에 가서 빨리 씻고 사무실로 가서 이번 주에 남은 일을 끝내겠다. 후배가 회사를 떠나는 게 확정됐다. 청운의 꿈을 품고 큰 무대로 가는 후배를 응원한다. 후배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바다로 나가는 연어를 떠올린다. 연어의 회귀도 신기하지만 물살을 헤엄쳐 드넓은 바다로 가야만 하는 연어의 본능에 주목하겠다. 연어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다. 인간은 충만함을 지향한다. 안주하지 않는 자세가 혁신의 본질이라면 유동하는 삶에 방향성을 부여해야 전진할 수 있다. 나아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는 사상적·이념적 진보가 아니라 동태적 관점에서 진보를 설파했다. 나도 <일상이 산티아고>에서 진보하는 삶을 적었다. 태어난 이상 끊임없이 걸어가야 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우리는 모두 진보주의자다. 후배의 진보를 지지한다. 후배의 전진에는 멈춤이 없을 것이다. 후배의 앞날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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