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루틴에 변화를 줬다. 오전 5시 반이 안 된 시각에 깨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어제와 같은 숫자에 나는 절망했다. 스타벅스에 가서 아침일기를 쓸까 고민하다가 마음을 바로잡는다. 나가서 걸어야겠다. 움푹 패인 샌프란시스코 만의 바다를 보고 와야겠다. 집에서 알비소(Alviso)까지 걷는다면 편도 40분이 걸릴 것이다. 집으로 오면 모두 8~90분이 소요될 것이다. 서둘러 걷자. 몸을 움직이자. 먹은 만큼 마신 만큼 뱉어내자. 땀이든 똥이든 침이든 오줌이든. 몸에 쌓고 살지 말자. 내 겉모습에 싫증이 났다. 나이키 러닝클럽(NRC) 앱을 켜고 과달루페 강을 따라 속도를 재며 걷는다.
10분에 1킬로미터를 걷기 위해 노력한다. NRC를 쓰면 내 속도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여유가 없다. 사색이든 상념이든 몰두할 수 없다. 지금은 살을 빼서 몸을 가볍게 할 시간이다. 정신적으로 충만하다고 다가 아니다. 육체적으로 몸이 무거우니 정신적으로도 둔해지는 느낌이다. 뭔가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뚫고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글쓰기로 생각했고 꽤 오랜 시간 아침마다 써왔다. 흡족하다. 동시에 맥주를 많이 마셨다. 음식도 절제하지 못하고 먹어댔다. 결과적으로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경신했다. 나는 매일 몸무게를 잰다. 내 몸무게가 가리키는 수치의 범위가 어느 순간 한 단계를 넘어섰다. 그동안 83킬로 이하를 유지했다면 한 달 동안은 85킬로 이하를 유지하기도 벅찼다. 현실적으로 기준은 80킬로라고 생각한다. 80킬로대에 도달한 때가 벌써 1년이 넘는다. 내가 어느 정도로 나태하게 생활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태만했다.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럴 때마다 내가 꺼내드는 카드는 걷기와 쓰기다. 미국생활이 반환점을 돌았으므로 집중적으로 걷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는 <일상이 산티아고> 프로젝트를 실리콘밸리로 이어올 생각이다. 산티아고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산티아고까지 프로젝트를 연결한다. 자가출판에 머물렀던 <일상이 산티아고>의 개정증보판을 상업출판사에서 내고 싶다. 어느 편집자와 잠깐 연이 닿았지만 출판으로까지 연결되지 못했다. <아무튼 순례>라는 제목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산티아고, 서울, 실리콘밸리에서 일상생활의 순례를 이어가는 게 콘셉트다. 이번에는 원고를 보완해서 제대로 보내겠다. 실리콘밸리에서도 40일간 800킬로미터를 걷겠다. 오늘 아침에 작정하고 걸은 거리가 10킬로미터다. 저녁에도 알비소까지 갔다온다면 하루 20킬로미터도 무리는 아니다. 할 수 있다. 재밌는 걷기 프로젝트를 하나 더 생성했다.
걷고나서 생각한 점을 글로 푼다. 그리고 그 글을 <일상이 산티아고>와 이어서 버무린다. 지난번 글이 조금 어설펐다면, 그래서 자가출판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와 동시에 시작한 2020년 초의 <일상이 산티아고> 프로젝트였다. 엔데믹을 향해가는 2022년 여름의 <아무튼 순례> 프로젝트는 그때와 달라져야 한다.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진보하고 전진한 사유를 담아야 한다. 이번 여름을 기대한다. 다시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