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토요일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쓴다. 어제 버클리까지 가서 술을 마시고 왔다. 많이 마셨다. 전철을 타고 오는 내내 졸았다. 눈을 떠보니 밀피타스였고 자칫 베리에사까지 갈 뻔 했다. 밀피타스에서 집까지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뭔가 쌓인 게 있나보다. 내 안에 뭔가 쌓여있다. 응어리에 대해서 김박사께 이야기했다. 주책 없는 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후 4시에 만나서 밤 11시에 헤어졌으니 첫 만남에서 7시간 동안 떠는 것이다. 나중에는 더 할 말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1차를 냈고 2차를 얻어먹었다. 술마신 다음날은 처지지만 힘을 내서 일정을 소화하겠다.
어제는 오전부터 진절머리나는 일이 있었다. 짜증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사람뽑는 문제로 아침부터 동료에게 싫은 티를 좀 냈다. 내 기준에서는 탈락한 사람에게 다시 면접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했다. 이미 채용하지 않는 것으로 검증된 사람을 기회라도 줘서 형평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명분을 만들자는 논리로 들렸다. 아뿔싸. 그 정도의 자신감도 없이 인사업무를 해나가자는 뜻인가. 진절머리가 났다. 면접이 끝나고 셋 중 가장 괜찮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딱 봐도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하자고 말하신다. 무엇이 종합적일까.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을까. 지켜봐야겠다. 내가 너무 급진적인가. 모르겠다. 진부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침이라도 뱉어야겠다.
어제 오전은 여러모로 성에 차지 않는 날이었다. 주간회의 시간에도 다시 시장조사로 마당 장이 말을 꺼냈다. 그러려니 한다. 데스크 이야기를 다시 하길래 분명히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 그는 ‘인사이트를 위한 인사이트’라는 표현을 썼다. 그가 나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느껴졌지만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생활방식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는 이와 무슨 대화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메타버스를 이야기하기에 우리가 제페토에서 회의라도 한번 해보자는 제안을 하려다가 그것도 안건에서 뺐다. 내가 더이상 회사 내의 선후배와 많은 가치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내 가치가 우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 흥미와 다른 이의 관심사가 일치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골프일 것이다. 안타깝다.
점심을 빠지기로 한 건 잘했다. 어제는 점심에 고미숙 강의를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버거킹에 갔다. 슬러시을 한 잔 마시고 재빨리 돌아왔다. 나만의 시공간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끼리 매번 노닥거리는 게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회의적이다. 기회를 만든 김에 점심 밥자리는 계속 빠지려고 한다. 조금 더 의미있는 일을 기획하고 해나가야 한다. 육아휴직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졌다. 미국생활 끝나고 여차하면 애들과 1년 로드트립을 떠나도 될 것이다. 맥주를 배워도 좋겠고. 해야할 일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마당 장과는 척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개처럼 따르지도 않겠다. 나는 나의 기질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어제 버클리를 오가는 길은 즐거웠다. 마지막에 교통카드 잔액이 모자랐다. 자판기에서 충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