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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by 김삶

축 처지게 시작하는 하루다. 즐겁지 않은 기억이 머리를 지배한 순간이다. 내버려두자. 애써 뭘 하려 노력하지 말자. 생각을 떨쳐버리려고도 하지 말자. 성에 차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기회로 삼겠다. 축구할 때 내가 매번 외치는 말이 있지 않나. 하나씩 하나씩. 어제 자리를 제대로 정리하고 잠들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놨고 머리도 감지 않았다. 찜찜하게 일어났다. 한순간에 무너지거나 확 놓을 때가 있다. 어제 외국어 수업을 취소하고 집에 와서 맥주를 들이켰다. 4병은 마셨다. 점심을 제대로 안 먹었기에 저녁에 폭식했다. 악순환이다. 저녁에 산타크루즈라도 다녀 와야겠다. 단식하겠다.


몸이 무겁다. 일요일에 늦게 잠들었고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피곤함을 느낀다. 내일도 셀타비고 경기를 가야 한다. 저녁 7시 반이다. 확답 메일을 받지 못했지만 곧 오리라 생각한다. 안 되면 내일 문의해도 될 것이다. 것도 안 되면 현장으로 바로 가도 된다. 재밌는 경험을 하고 싶다. 현장을 계속 찾아다니고 싶다. 뭐라도 쓰고 싶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 정체된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 쓰고 걷고 생각하겠다. 의지를 다진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메일을 보냈다. 답을 받을 것이다. 오지 말라고 하면 안 가도 된다. 어떤 상황을 맞더라도 헤쳐나갈 것이다. 집념을 버리지 않겠다.


아침 전화외국어 수업을 하기 전에 한 문단 더 쓴다. 나의 의지에 대해 쓴다. 나의 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굳은 믿음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갈 것이다. 내 행위가 중요하다. 내 가치관이 중요하다. 내 일관성이 중요하다. 남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상관없다. 그렇기에 내가 할 일 다 했으면 된 거다. 누가 어찌 생각하는 것까지 관여할 바 아니다. 공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왜 공을 못 잡느냐고 상대를 탓하지 말자. 상대의 그릇이다. 상대의 수준이다. 왜 내 인식수준에 미치지 못 하느냐고 따져묻지 말자. 그저 눈을 감아버리는 거다. 신해철의, 아니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사로 마친다.

해가 떠오른다. 그만 일어나자. 어른이 될 시간이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나를 시험한다. 2023년, 새 길을 떠난다. <미국현장 리포트>의 필진이 됐다. (촬영: 김삶)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내게 속삭이지.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봐. 길을 떠나야 해. 네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 거야.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 들지마. 힘이 들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저 웃어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Now we are flying to the universe. 마음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저 웃어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더 높이. 더 멀리. 너의 별을 찾아 날아가.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 신해철, <해에게서 소년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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