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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Feb 18. 2021

'힘내라'는 말 대신에 '고맙습니다'

'우동 한 그릇'의 의미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다는 것 등......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힘내라'라는 말 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더 사려 깊게 느껴진다.  섣불리 상대방을 위하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오히려 난감해할 수 있다.  사랑에 관한 시를 지을 때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랑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일류 시인이라고 한다. 행간의 의미로 전달해야 고수이다.  값싼 격려보다 감사의 표시가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고 마음에 긁히는 구절이 있어 인용한다.  다시 읽어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일본어 원제목은 一杯のかけそば로 직역하자면 '한 그릇의 메밀 온면'이다. 일본은 12월 31일에  메밀 온면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에게 친숙한 우동이라고 번역했는데  섣달 그믐날 메일국수 먹는 풍습을 살려서 '메밀국수 한 그릇'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1989년 일본 국회에서 한 의원이 이 소설을 낭독하여 눈물바다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후 작가의 스캔들로 이 소설마저 비판을 많이 받아서 일본에선 잊힌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다시 읽어봐도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딸아이와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가 장애가 좀 있어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했다. 자세히 보면 티가 나지만 크게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떤 나이 지긋한 여성분께서 다가오더니 딸애에게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말을 들은 딸애와 나는 당황스러웠었다. 말을 하는 것일까?


그분은 걸음걸이가  불편한 사람이 걱정이 돼서 힘내라고 건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딸애는 밖에 나갈 주위의 시선이 몹시 신경 쓰인다고... 안 봐줬으면 한다는 말을 자주 다. 특히 장애인 친구들하고 같이다닐 때, 쳐다보지 말고 일반인처럼 그렇게 대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제 어엿한 숙녀 나이인지라 더욱 그럴 것이다.


'우동 한 그릇' 주인 부부는 이런 면에서 고수다. 무심한 척, 우동 한 덩이를 더 넣어주고 '힘내라'라는 말 대신 찾아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쥰도 그 배려를 느꼈다. 그래서 학교 글짓기에서 이런 글을 썼다.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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