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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Dec 15. 2021

웬만한 사회공헌 활동은 마피아도 한다

ESG를 MSG로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

"나는 내 생애의 황금기를 전부 사회를 위해 바쳤다. 그런데 내가 얻은 것은 차가운 세간의 시선과 비난, 그리고 범죄자라는 낙인뿐이었다." 악명 높은 미국 갱단의 두목 알 카포네의 말이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소개된 내용이다. 세간의 비난에 대해 그는 이런 말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잘 한 일도 많은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실제로 알 카포네는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대공황 시절 그는 시카고에 실직자를 위한 무료 급식소를 차렸다. 하루에 2,000여 명의 시민이 이용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이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파티도 열어주고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는 등 자선사업도 많이 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알 카포네를 ‘현대판 로빈 후드’로 여기기까지 했다.

<알 카포네에 의해 설립된 무료 급식소(1931) / wikipedia>


한 때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기도

알 카포네는 최고로 영향력이 컸던 마피아 보스로 불린다. 1930년엔 타임지 표지 인물로도 선정됐다.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렸고 시카고 젊은이들이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요샛말로 표현하면 살인과 약탈을 제외하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간 우애가 지극했고 조직원의 보스로서 조직관리도 탁월했다. 알 카포네는 “나는 시민이 바라는 것을 공급했을 뿐이다. 내가 범죄자라면 선량한 시카고 시민들 역시 유죄다”라며 자신이 좋은 일을 하는 사업가라고 주장했다.


금주법이 폐지되자 알 카포네는 밀주 유통에서 우유 유통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우유는 매우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유통되고 있었고 품질도 엉망이었다. 우유 업자의 로비에 넘어간 한 국회의원이 “조금 상한 우유도 건강에 좋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알 카포네는 신선한 우유 유통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의회에 로비해서 우유 유통기한을 표시하도록 법제화한 것도 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알 카포네에 의해서 신선한 우유 유통의 근간이 마련된 것이다


대부분의 마피아는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

대부분의 미국 마피아들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미국 범죄 스릴러물로 1960~70년대 뉴욕 경찰의 부패상과 마약 거래의 실상을 보여준 영화이다. 영화 도입부에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구호활동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도 갱단 두목의 닉네임은 '할렘가의 로빈 후드'였다. 잔인한 갱단 두목이었지만 할렘가의 빈민들에게 자선 사업가였던 것이었다. 다음은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마약왕의 브랜드 전략과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글이다.


https://brunch.co.kr/@oohaahpoint/7




최근의 경영 화두는 ESG이다

우리나라 속담 중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된 후에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은 마피아식 방법과 무엇이 다를까? 이젠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화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하는 활동이 중시되는 마켓 3.0의 시대다. 지속가능 경영과 공유가치 창출이 중심이 되는 기업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의 경영화두는 단연 ESG이다. ESG는 환경경영(Environment), 사회책임경영(Social Responsibility),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를 일컫는 말이다. ESG는 2005년 자본시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투자자 가이드로 처음 등장했고 이후 기후 변화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 여러 요소가 서로의 논리를 강화시켜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거슬릴 수 없는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글로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무디스와 같은 국제신용평가회사는 나라별 ESG 신용영향 점수를 발표하고 있다. 


<자료 : kbiznews.co.kr>


CSR도 제대로 못하는데 ESG라니

기업의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CSR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ESG라니, 현장에선 이 두 활동의 차이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다. 전경련의 최근 조사 결과에 의하면 ESG 현상에 대한 공통적인 반응은 "ESG가 대세라는 거 인정하지만 왜 하는지 솔직히 공감이 안 간다"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한 재정난 상황에서 ESG가 새로운 규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업이 많다. 


ESG 경영은 기업에게 새로운 부담이 되기도 하고 가성비 높은 PR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일부 기업은 ESG를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유가치의 창출, 윤리경영, 착한 기업, 개념 있는 기업, 상생, ESG 경영 등은 모두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중시하는 말들이다.  ESG를 기업의 핵심가치로 여기고 ESG 관리를 잘하는 기업이 그렇지 못하는 기업에  비해 위기에 더 빠른 회복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ESG를 MSG로 쓰면 안 되는 이유

하지만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시늉만 내는, 보여주기 식 활동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ESG를 MSG처럼 쓰면 바로 탄로 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정보기술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기업들의 일방적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ESG 경영을 내세운 대기업에서 중대 재해와 하도급 갑질 논란이 발생해  'ESG 워싱' 비판에 휩싸인 적이 있다. 새로운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MZ 세대일수록 가치소비를 중시한다. 혼쭐과 돈쭐로 적극적 의사표시를 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기업 이미지 포장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은 마피아도 해왔다. ESG 경영은 재무적 성과보다 과정과 동기를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충분한 준비 없이 남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진성성과 지속성, 업의 본질과의 연계성을 기본으로 한 ESG 경영으로 한 차원 높은 기업 활동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이 글을 요약해서 광주일보 은펜컬럼(2021.12.15)으로 게재했습니다.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3949670073061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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