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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Jan 28. 2021

요정 '태화관'과 선술집 '그린 드래곤'

세계 역사를 바꾼 술집과  술 이야기

몇 년 전에 한 역사 강사가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태화관을 룸살롱으로, 기생을 마담으로, 또 낮술을 마셨을 뿐 아니라 일본 경찰에 전화해서 자수했다고 말해서 고소당한 바가 있다. 검찰은 1년여 조사 끝에 2018년 무협의 처분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한 것이고 요정을 룸살롱, 기생을 마담이라고 부른 것은 시대가 바뀌어서 그렇게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 사건으로 태화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태화관 건물은 1980년에 서울 재개발에 밀려 철거됐고 그 자리에 태화 복지재단 건물이 있다.


탑골 공원 행사에 손병희 선생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만세 운동을 실천한 사람들은 학생, 일반인들이었다.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쉬운 대목이긴 하다. 장소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태화관이 당시 고급 요릿집이자 요정이었으니까 좀 과장하게 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3.1 운동은 탑골 공원에서 시작됐다고 배웠다. 아마 태화관을 거론하기가 마뜩잖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집에서 행사를 했다고 해서 그 의미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식을 가진 요릿집 태화관. 자료 : 한겨레>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 중에서 술집과 커피하우스가 많다.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커피하우스가 큰 역할을 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새로운 정보를 얻고 토론하는 공론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 결과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분야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혁명의 진원지로 불린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자주 모여서 토론하는 장소였는데 특히 카페 ‘드 포아(de Foy)’는 급진주의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1789년 7월 12일 카미유 데믈랭은 이 카페에서 '무기를 들어라'라고 외치며 혁명을 선도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독일에선 주요 정치적 집회가 맥주홀에서 열렸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사회민주주의의 주스라고 불렀다. 맥주와 사회민주주의, 정치토론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했고 주요 정치적인 집회는 술집, 맥주 양조장 강당, 맥주홀에서 일어났다. 예를 들면, 히틀러는 금주 주의자였는데도 최초 연설을 1919년 뮌헨의 호프브로이 켈러 맥주홀에서 거행했다. 히틀러에 의해 주도한 1923년 뮌헨 폭동도 맥주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독일에는 독특한 맥주홀 문화가 있다. 


독일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 3000명이 입장할 수 있다. [사진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euhaus.de) 홈페이지]


미국 독립혁명의 지휘소 '그린 드래곤  타번'

미국 역사학자들은 보스턴에 있는 ‘그린 드래곤 타번(Green Dragon Tavern)’을 독립전쟁의 지휘소라고 부른다. 타번은 영국의 펍과 비슷한 선술집으로 술과 음식이 판매되던  업소였다. 이곳은 존 아담스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소였고 보스턴 티파티 사건도 이 선술집에서 기획됐다. 폴 리비어가 영국군의 공격을 알리기 위해 렉싱턴으로 출발한 곳도 이곳이었다.


그린 드래곤 타번 / 자료 : wikipedia


식민지 시대에 미국 독립혁명을 주도한 음료는 술(Rum)

당시에 뉴 잉글랜드 지역의 주요 산업은 럼 등 증류주 제조산업이었는데 영국이 당밀조례, 설탕 조례를 제정하고 주원료인 당밀 등에 세금을 부과하자 반영 감정이 고조됐었다. 뉴 잉글 란드 증류주 제조업자들이 영국으로부터 수입을 배제하는 조직을 지원하게 되었고 럼과 당밀에 대한 세금으로 인해서 럼은 혁명적인 풍미를 자아내는 음료가 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John Adams)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왜 당밀이 미국 독립에 핵심적인 요소였다는 사실을 고백하는데 낯을 붉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많은 위대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그보다 사소한 원인으로부터 선행되었는데도 말이다."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보스턴에 정박해 있던 배에는 차뿐만 아니라 사과주도 꽤 실려 있었다. 사과주도 차와 마찬가지로 관세가 매겨져 있어 영국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었다. 차 상자는 바다에 던져졌지만 사과주는 어떻게 됐을까? 바다에 던지지 않고 모두 가져와 마셨다고 한다. 보스턴 사과주 사건으로도 불릴 뻔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공론장으로써의 술집

우리나라에서는 술집이나 주막집이 공론장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해왔다. TV 역사 드라마를 보면 세상인심을 파악하려고 주막집으로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저잣거리 주막집이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3.1 독립운동 민족 대표들이 태화관으로 간 것은 이러한 문화적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엔 옥내 집회 장소가 많지 않았다. 유교적인 풍습도 남아있어서 술을 마시면서 중요 안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태화관이 미국의 ‘그린 드래곤 타번’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몇 년 전 이 주제에 대해 쓴 칼럼을 재구성하여 게시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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