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포 Jun 25. 2022

유럽인들이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신 이유는?

맥주와 인류 문명



코넬리스 피콜렛(Cornelis Picolet), 맥주 마시는 소년 : Boy Drinking. 1679.


맥주 마시는 소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코넬리우스 피콜렛의 그림이다. 소년이라기보다는 아동으로 보이는 아이가 맥주잔을 들고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맥주를 마시는 것을 그림으로 남기다니. 지금으로 보면  불량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소년이 술을 마시고 있는 그림은 이외에도 많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그림에는 그 당시의 사회상을 나타내고 있다.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는 식사 시간에 물 대신 맥주를 주로 마셨다. 식사  테이블에는 통상적으로 물 대신 맥주가  놓여있었다. 이때 마시는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0.5~2.8%로 Small Beer라고 불렀다. 주로 맥주를 만들고 난 후 그 찌꺼기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도수가 약했다. 아이들과 여성들은 이 스몰 비어를 마셨다. 그러니까  '맥주 마시는 소년'은 도처에 있었다.  


성인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일반 맥주를 마셨는데 이것을 Strong Beer라고 불렀다. 당시 성인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5.7리터의 맥주를 마셨다는 통계가 있다. 현대 보건 기구에서 하루  물 2리터 마시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중세 유럽인은 하루에 맥주를 5.7리터나 마셨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영국 노동자들은 펍(Pub)을 방문하여 맥주를 마시고 출근했다. 런던에는 아직도 아침부터 맥주를 파는 펍이 몇 곳이 남아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답다. 다음 사진은 영국의 전통 펍인 마켓 포터에서 아침 7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켓 포터는 아침 6시부터 문을 열고 아침 술 판매를 한다. 이 펍은 해리포터 영화에도 등장하는 명소이다.



<런던에 있는 마켓 포터 펍, 아침 7시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다 / Atlas Obscura, 2018년>



유럽 사람들이 물보다 맥주를 많이 마시게 된 이유는?

그럼 유럽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맥주를 많이 마셨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물이 좋지 않아서, 특히 석회질이 많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유럽에 아비앙 생수처럼 좋은 물이 나오는 지역이 적지 않다.  진짜 이유는 물이 위생적이지 않았기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대부분 지역의 대도시엔 강물이 오염돼서 마실 수가 없었다.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런던 같은 대도시가 특히 심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의사들은 물 대신 맥주를 마시고, 맥주가 없으면 빗물을 받아 마시라고 권했다. 맥주는 맥아를 끓여서 발효하는 과정이 있어서 살균이 되기 때문에 안전한 음료였다. 그런데 당시 유럽인들은 물을 끓이면 살균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왜냐하면 미생물 자연 발생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0년대 루이 파스퇴르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미생물의 존재를 주장하기 전까지 그랬다.


맥주를 마시면 안전한데 물을 마시면 각종 질병에 걸릴 수가 있었다. 유명 인사 중에 물을 마시고 식중독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맥주를 마셨다. 영국의 주부들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월 1회 정도 집에서 맥주를 만들었다. 에일 맥주를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을 에일 와이프(Alewife)라 불렀다. 우리말로 하면 주모(酒母)에 해당하는 말이다. 1577년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영국 인구는 400만 명이었는데 에일 하우스와 선술집이 16,000개나 존재했다.



맥주 연구를 통해 밝혀진 파스퇴르의 대발견

당시 유럽의 과학계는 미생물 자연 발생설이 주류 사상이었다. 병원체는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믿어왔다. 자연 발생하기 때문에 살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 보면 보통 무지한 게 아니다. 이러한 통념이 2000년 동안 지속해왔다.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1860년대  주류회사로부터 의뢰받아 포도주와 맥주의 발효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과학사에 남을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그는 술이 효모에 의해서 발효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냈고 더 나아가 미생물, 세균이 존재하고 전염된다는 것을 규명했다. 또한 열을 가하면 미생물이 죽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저온살균법을 개발했다. 이때부터 효모의 제어와 살균에 의한 장기보관이 가능해졌다. 파스퇴르 공법으로 불리게 된 식품 열처리법은 유제품 보존기간을 늘리는데 유익한 방법으로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파스퇴르 우유)  파스퇴르는 1876년 그동안의 연구를 모아서 <맥주에 대한 연구>를 출판했는데 이후 맥주의 품질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파스퇴르는 1862년 그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통해서 미생물의 자연 발생설이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으로 미생물의 존재에 대한 연구가 급속도로 이뤄지게 되고 이때부터 감염에 대비한 여러 활동, 위생에 대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지금은 외과 수술 도구 등을 소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살균 절차가 도입된 것은 1870년대부터였다.  


1840년대 비엔나 병원의 의사였던 제멜바이스는 수술 전에 손 소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병원에서 쫓겨나고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파스퇴르 보다 20년 앞서서 이런 주장을 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전에 포스팅했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서 규명된 병원체 이론은 1882년이 되어서야 인정되었고 이 사건은 라이프지 선정 밀레니엄 100대 사건 6위로 선정됐다.


https://brunch.co.kr/@oohaahpoint/30


술에 절어 있는 영국 사회를 구한 음료가 바로 홍차이다

홍차는 끓인 물로 만들기 때문에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음료였다. 그때까지도 살균의 원리를 몰랐지만 마시고 아무도 탈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홍차를 마시니까 음주로 인한 각종 사고로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 노동자에게 홍차는 필수적인 음료였다. 이때 만들어진 영국의 티타임은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국 사회에 음엔 커피가, 이어서 홍차가 큰 역할을 했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빅토리아 여왕 시기(1837-1901)에 이르러서야 홍차가 맥주보다 많이 소비되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 작가 시드니 스미스는 "차를 우리에게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하라. 차가 없었다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7년 미국 라이프 지가 1000년 동안 인류를 변화시킨 100대 사건을 선정했는데 26위가 1610년 유럽에 수입된 차이다. 영국은 홍차 수입으로 인해 아편전쟁까지 일으키고 식민지 인도에 차 플랜테이션 설치하여 20세기 초엔 중국을 누르고 세계 최대의 차 생산국이 됐다.



<KBS '바다의 제국 4부' 캡처>




이전 08화 요정 '태화관'과 선술집 '그린 드래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