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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향기 Jul 15. 2024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3

일상으로의 초대


건강하게만 만나면 돼


몇 개월에 걸친 검진이 마무리되어 가던 즈음에

여러 과학적인 기준을 근간으로

전문의가 점찍어 준 출산예정일은

2005년 12월 26일이었다.


물론 확정적이지 않은 정황 상

그보다 며칠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으며

특히 첫 출산의 경우

그 변수의 폭이 보다 넓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최종 판단이었다.


사실 녀석이 몇 날 며칠쯤 나오느냐의 문제는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낮고 겸손한 자세로

이 위대한 우주의 섭리를 지켜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가장 핵심적이며 유일한 가치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었다.


그렇게 아이와의 조우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유사시 신속한 대응을 위한 필요 물품들을 담은

가방이 꾸려졌고

언제든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사소한 것부터 몇 번이고 꼼꼼히 챙겼다.

당분간은

빈틈없는 오분대기조로 변신해야 하는 것이

내 역할이자 임무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니

왕두가 태어 난 다음에 아이를 더 낳았다면

아마도 그때는

좀 느긋하게 여유를 부려보지 않았을까 싶다.


모름지기 무슨 일이든

처음은 늘 낯설고 어려운 법.


어서 와. 지구는 처음이지?



어느새 겨울이 정점으로 치닫고 해가 바뀌었다.

예정일 대로였다면 태어난 지 4,5일 만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어야 할 억울한 운명이었던

녀석은

다행히 2005년을 모두 보내고 나서야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늦은 밤 진통을 감지한 아내를 테우고

머뭇거림 없이 병원으로 직행했지만

녹록지 않은 출산의 과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자정 무렵부터 꼬박 아홉 시간 동안 이어진

고통스러운 진통을 반복하고도

녀석은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덩달아 밤을 새운 주치의의 꺼끌한 얼굴색만큼이나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무렵,

자연분만 시도는 더 이상 힘들며

안전을 위해서라도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료진의 결론을 전달받았다.


이윽고 몸에 남은 에너지라곤

밥풀떼기만큼도 없어

툭. 하고 치면

금방이라도 앞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아내가

휠체어에 실려 수술실로 향했다.

안 그래도 작은 체구가 어찌나 더 왜소해 보이던지.

나는 지난번 초음파실에서 녀석에게 했던 것처럼

마음속으로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김여사.

너 혼자만 감내하기엔 참으로 힘든 여정이구나.


………

수술은 별 탈 없이,

오래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나를 찾는 굵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병원 복도 위로 쩌렁쩌렁 울렸고

덜렁이는 수술실 문을

있는 힘껏 밀고 들어간 그곳에

아들이  있었다.


“산모도 아이도 건강해요. 축하해요 아버님”

간호사님의 말씀에 머리를 꾸뻑 숙이고 보니

녀석은 무언가 잔뜩 불만인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잘 왔어 아들.

우리 재밌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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