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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향기 Jul 15. 2024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2

만남 - 그녀가 웃었다


“ 그런데… 아이가 머리가 좀 크네요…큭 ”


볼록 나온 아내의 배 위를

호떡누르개 비슷한 기구로 비벼가며

부지런히 초음파 검사를 하던 주치의의 양 볼이

어느 순간 부풀어 올랐다가 급하게 사그라 드는걸

현장에서 보고야 말았다.

아마도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힘주어 오므린 결과였으리라.


그래.. 의사도 사람인데 웃길 땐 웃어야지.

무뚝뚝하고 사무적이며 기계적인 태도로

환자를 응대하는 것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런데.. 잠깐만…

뭐, 뭐라고요..??

머리가… 크다고요??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고

심장도 콩닥콩닥 잘 뛰고

손가락 발가락 각 열 개씩 잘 자리 잡았고….


라는 주치의 (여)선생님의 차분했던 말씀은

그 순간부터

흘려들은 얘기처럼 잔상이 흐려져 버리더니

내 머릿속엔 오로지


“ 머. 리. 가. 크. 다 ”

라는 소리만 쉼 없이 맴돌기 시작했다.


아하 이 녀석, 날 닮았구나.



나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면

일단 울 아부지의 두상이 크(시)다.

그리고

나도 크다.

결정적으로 내 아내의 머리는

작다. 매우.


어쩌다 보니 초음파실 모니터를 통한  첫 만남부터

나는 아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성장을 거듭한 끝에

어느덧 “인간”의 이목구비를 갖춰가던 녀석에게

반가운 인사보다 먼저 사과부터 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아


어릴 적 동네 혹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받는 일은 다반사였고

까까머리 훈련병 시절, 사이즈가 맞는 철모가 없어

“내피”를 뜯어내고 써야 했던 서러움,

지급받은 최대형 전투모의 뒷부분 아래쪽 봉재선을 2센티쯤 잘라내야

그나마 머리가 숨을 쉬는 거 같았던 기억들,

끔찍이 좋아하는 야구를 보러 야구장엘 갈 때도

응원하는 팀의 모자를 쓸 수 없었던 일,

긴 세월 애써 외면했지만

끝내는 “대두 남자 모자”라는 검색어를

온라인 쇼핑몰 검색창에 입력할 수밖에 없었던

굴욕적인 순간까지.


아무튼 반갑다 아들아.

우리는 네가 세상에 나와서

주민등록법 상 “성명/이름”이라는 걸 갖기 전까지는

“왕두”라고 부르기로 했어.

어쩐지 “대(大)두”라는 단어는 좀 직설적인 데다

마침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작물인

“콩”의 이름과 겹쳐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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