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그녀가 웃었다
“ 그런데… 아이가 머리가 좀 크네요…큭 ”
볼록 나온 아내의 배 위를
호떡누르개 비슷한 기구로 비벼가며
부지런히 초음파 검사를 하던 주치의의 양 볼이
어느 순간 부풀어 올랐다가 급하게 사그라 드는걸
현장에서 보고야 말았다.
아마도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힘주어 오므린 결과였으리라.
그래.. 의사도 사람인데 웃길 땐 웃어야지.
무뚝뚝하고 사무적이며 기계적인 태도로
환자를 응대하는 것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런데.. 잠깐만…
뭐, 뭐라고요..??
머리가… 크다고요??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고
심장도 콩닥콩닥 잘 뛰고
손가락 발가락 각 열 개씩 잘 자리 잡았고….
라는 주치의 (여)선생님의 차분했던 말씀은
그 순간부터
흘려들은 얘기처럼 잔상이 흐려져 버리더니
내 머릿속엔 오로지
“ 머. 리. 가. 크. 다 ”
라는 소리만 쉼 없이 맴돌기 시작했다.
아하 이 녀석, 날 닮았구나.
나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면
일단 울 아부지의 두상이 크(시)다.
그리고
나도 크다.
결정적으로 내 아내의 머리는
작다. 매우.
어쩌다 보니 초음파실 모니터를 통한 첫 만남부터
나는 아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성장을 거듭한 끝에
어느덧 “인간”의 이목구비를 갖춰가던 녀석에게
반가운 인사보다 먼저 사과부터 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아
어릴 적 동네 혹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받는 일은 다반사였고
까까머리 훈련병 시절, 사이즈가 맞는 철모가 없어
“내피”를 뜯어내고 써야 했던 서러움,
지급받은 최대형 전투모의 뒷부분 아래쪽 봉재선을 2센티쯤 잘라내야
그나마 머리가 숨을 쉬는 거 같았던 기억들,
끔찍이 좋아하는 야구를 보러 야구장엘 갈 때도
응원하는 팀의 모자를 쓸 수 없었던 일,
긴 세월 애써 외면했지만
끝내는 “대두 남자 모자”라는 검색어를
온라인 쇼핑몰 검색창에 입력할 수밖에 없었던
굴욕적인 순간까지.
아무튼 반갑다 아들아.
우리는 네가 세상에 나와서
주민등록법 상 “성명/이름”이라는 걸 갖기 전까지는
“왕두”라고 부르기로 했어.
어쩐지 “대(大)두”라는 단어는 좀 직설적인 데다
마침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작물인
“콩”의 이름과 겹쳐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