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퇴근 후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이 평소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보통은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가 은근슬쩍 빠져나와 귀가를 서둘렀을 텐데 어느새 자정을 너머 집 근처로 가는 광역버스의 막차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나는 일어날 기색도 없이 천천히 술잔을 비워내기만 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어수선한 목소리들이 뒤엉켜 불규칙한 기계음처럼 귓가에 웅성거렸고 이따금 주위의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지만 몇 마디 건성으로 받아넘길 뿐, 내 머릿속과 온 신경은 아까부터 한 가지 질문 속에서만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가 죽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며칠 전, 그가 의식불명이며 매우 위중하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비보가 도무지 실감되지 않아 한동안 멍한 기분에 사로잡혀 다른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관련 뉴스들을 빠짐없이 검색하고 찾아봤으나 모든 매체가 똑같이 그에게 닥친 절박한 상황만을 말하고 있었다.
맘 졸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초조하게 흘러가는데도 이것은 오보였다, 혹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같은 뉴스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긴 음악적 잠행을 끝내고 지난 6월경 드디어 신곡을 발표하며 공연을 비롯한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랬던 그가 지금 병상에 누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더욱이 사고를 일으킨 주치의에 대한 석연치 않은 루머들이 하나둘씩 확인되고 사실로 드러나며 받은 충격은 형용하기 힘든 수준의 분노를 불러왔다. 그럼에도 어째서 쓰러져 의식을 잃기 전에 그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가 모니터에 떴다.
막연하고 답답했던 소년 시절, 그는 나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비록 일면식은 없었지만 나는 그가 "그대에게"의 경쾌한 인트로(intro)와 함께 무대 중앙으로 나와 "오우예에에~~" 목청을 높였던 1988년 대학가요제 때부터 그의 음악을 심하게 애정하며 추종해 온 오래된 리스너(Listener)이자 팬이었다.
데뷔 이후로 새로운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레코드점을 찾는 일을 잊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면 가장 먼저 번호를 입력했던 것도 그의 노래였다.
그러는 사이 밴드 "무한궤도"를 거쳐 조금은 연예인스러웠던 솔로 활동을 마치고, 마침내 "N.EX.T"를 결성하면서 그는 위대한 음악가로서의 기치를 아낌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일렉트로닉 음악이 대중음악계에 뿌리내리도록 앞장선 선구자의 역할도 그의 몫이었고 작사 작곡 편곡을 너머 다방면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보여준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였다.
한편으론 느지막한 새벽까지 잠 못 들던 청춘들을 라디오 앞으로 불러 모아 그들만의 끈끈한 소통을 이어가던 능숙한 DJ였으며 우물쭈물 방황하는 이들에게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하거나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던 꽤 괜찮은 어른이었다.
나이 들면서는 비단 음악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진영 논리에 갇혀 어물쩍 거리는 패널들을 향해 신랄하게 일갈하는 논객이었으며 민감한 이슈에도 눈치 보지 않고 올곧은 제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특히나 노통이 서거했던 전후의 암울한 시기에 무대 위에 올라 함께 울고 웃었던 장면은 여전히 가슴 먹먹한 일화로 남아있다.
어쩌면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는 그런 소신과 신념 때문에 블랙리스트라는 그물에 걸려 긴 시간 여러모로 시달렸던 사정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변절했다거나 비겁해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술자리가 끝난 뒤 홍대 앞 인근에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택시를 탔다. 신호등 불빛이 유독 선명하게 깜박이는 차분해진 도로 위로 시간은 새벽 두 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에 대한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죽음은 엄연한 실존의 범주이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명이다. 세상 어느 죽음인들 아름다울 수 있으며 애달프고 안타깝지 않을까. 그러나 그를 극단으로 내몰았던 일련의 황망한 과정이 나를 후벼 파듯 아프게 했다. 음악과 노래로, 그리고 깨어있는 메세지를 통해 내가 받았던 기쁨과 위로들이 오래 묵혀 둔 일기장을 꺼내 읽는 것처럼 자꾸만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기사님 미안합니다
아산병원으로 가 주세요
이제 막 남산터널을 지나 한남동으로 접어들 무렵 나는 결심한 듯 택시의 행선지 변경을 부탁했다. 이대로 곧장 가다가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다면 더는 방향을 바꾸기 어려울 거였다.
그 순간 취기에 이끌려 쎈치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와 인사를 나눠야겠다는 열망이 마음속 가득 나를 지배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단순히 "팬심(Fan 心)"의 발현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설명하기 어려운 내밀한 감정의 이음새가 나를 그에게로 이끌고 있었다. 게다가 여러 사정을 따져봐도 그때가 아니라면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갈 기회도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적한 올림픽대로를 달려 도착한 장례식장 앞 화단에는 드문드문 피워낸 꽃잎 같은 촛불들이 누군가가 틀어놓은 그의 노래들에 섞여 아련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우울한 낯빛을 차마 숨기지 못한 사람들 여럿이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이 주변을 서성이는 게 보였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다가 아무 정보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으나 그의 빈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로비를 지나 계단 위로 줄지어 서서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행렬의 맨 뒤에서부터 차근차근 나아갈수록 그의 죽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오고 있음이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빈소에 가까워지자 가지런히 쌓여가는 국화꽃들 위로 양 허리춤에 자신만만하게 손을 올린 근사한 차림의 그가, 나를, 아니 모두를 내려다보는 듯한 영정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래, 네모난 증명사진 같은 영정은 때로 얼마나 진부한가. 과연 그다웠고 그의 장례식에 어울리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응시했다. 그곳의 주광색 조명은 뜻밖에도 몹시 밝았는데 제각각의 슬픔이 얼굴에 패인 주름이 되어 낱낱이 드러날 만큼 주변은 환했다.
출구 쪽에는 한 눈에도 그의 누나임을 알 수 있는 작고 가냘픈 여인이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금방 중심을 잃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그녀 앞에 마주 서자 얼마간 가까스로 눌러놓았던 탄식과 절망과 울화가 한꺼번에 눈가로 몰려들더니 숨길 사이도 없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아..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움에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서둘러 고개를 숙였고 생면부지의 눈물조차 기꺼이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짧게 잡아주었다.
그러니까 2014년 10월 28일에서 29일로 넘어가던 그 밤에 나는, 나의 슈퍼스타였던 마왕 신해철과 작별했다.
문학 평론가 김현 선생은 일찍이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집에 붙인 서평에서 아래와 같은 진혼가를 남겼다.
"..... 그의 시(詩)들을 접근이 쉬운 곳에 모아놓고, 그래서 그것을 읽고 그를 기억하게 한다면 그의 육체는 사라졌어도 그는 죽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시(詩)가 충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빨리 되살아나 그의 육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육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 -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中 / 김현 / 1989 )
선생의 글 가운데 "시"를 "음악"으로 치환해 읽으며 오랜만에 그를 추억한다.
다행히도 많은 노래와 음악과 영상이 남아있어, 그가 불현듯 떠오르거나 그의 음악과 함께 했던 시절이 아득해질 때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니 더없이 감사한 노릇이다.
곧 그의 10주기가 다가온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나는, 그가 이 세상에서 살다 간 만큼의 시간을 넘겨 생전의 그보다 많은 나이에 이르렀다.
이제는 서로의 경계를 알 수 없는 다른 차원 어딘가로 나뉘어 있지만 "먼 훗날 언젠가" 그의 딸이 도안했다는 묘비 앞에 서서, 달다가도 씁쓰레한 소주 한잔, 건넬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굿바이, 해철이 형.
*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Monocrom /1999
*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 마" - 해에게서 소년에게 中 / 1997
* 먼 훗날 언젠가 - 1997
* 그리고
Here , I Stand For You - single /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