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뇌가 멈추던 날

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by 오유나

내 뇌는 멈췄다.
정말로, 멈췄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다.


극한의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점점 자극을 좇기 시작했다.
현실을 직면할 수 없으니, 그냥 눈앞의 것들에 반응하며 살았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아무 생각 없이 해냈고, 그 ‘아무 생각 없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사람은, 미래를 함께 그려가던 연인이었다.
그날은 노동절이었다.


망치처럼 무언가가 머리를 내리쳤다.
나는, “너를 만나는 게 힘들다”며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지금 생각해도 잔인하고 무책임한 말.

그런데 그는, 오히려 나를 달래주었다.
자신이 더 잘하겠다고, 우리가 괜찮아질 수 있다고.
그 다정한 위로에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회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는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에게 말했다.
“오늘, 집에 일찍 와줄래?”


그날 저녁, 우리는 마주 앉았다.
나는 고백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그냥 사과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그는 말했다.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는 내 상황을 알고 있었다.
임금 체불의 고통도, 내 잘못도, 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권유했던 거였다.
심리상담을.


나는 정신과를 찾았다.
뇌파 검사를 했다.
화면 속 내 뇌는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번아웃이 왔네요.”
다른 사람의 뇌파는 초록인데, 내 뇌만 새파랬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왜 아무 말도 안 떠올랐는지, 왜 생각이 멍청해진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건 내 뇌가, 기능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약물을 권유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회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젠 더는 내 책임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더는 나를 다 태워가며 버티고 싶지 않았다.


퇴사일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상담을 시작했다.
매주 한 번씩.

상담실에 앉아 있는 1시간 동안
나는 매일 울었다.


애인 이야기를 하다가 울고,
회사 이야기로 넘어가다 또 울었다.


상담사는 말했다.
“당신은 자신을 돌보지 않아요.
늘 다른 사람 먼저 챙기고, 감정을 묻어두다가 폭발시켜요.”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라고 했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눌러둔 감정이 찾아온 반작용이었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나아지고 싶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연습했다.
마음을 보는 법, 감정을 느끼는 법,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과 몸을 잘 돌보고 있다.

이 사건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나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게 했고,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졌던 무게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가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과
이별하게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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