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보내는 연습

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by 오유나

며칠 전, 꿈속에서 그가 결혼을 했다.

나는 저 먼발치에서 울먹이며,
그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들어와."


현실에선 다시 마주친 적 없지만,
꿈속에서 그는 나를 불렀고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그 품 안에서 조용히 울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의 눈에는 슬픔이 고여 있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익숙한 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지난 시간,
차마 다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울먹이며 조금씩 꺼냈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
"미안해."
가장 잊고 싶지 않았던 말,
"정말 고마웠어."


하지만 시간은 멈춰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등을 돌려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원망 없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길을 정해둔 사람처럼 담담하게 걸어갔다.


그는 늘 결혼을 원했다.
삶을 설계하고, 스스로를 다듬으며 자신만의 속도를 지켜내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 곁에서 삶을 배웠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배웠다.

비록 오래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은 깊었고
그 사람은 나에게 오래도록 배어 있었다.


헤어질 때, 그는 말했다.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와 함께했던 시간을 발판 삼아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어.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 삶의 구절마다, 그의 말이 자막처럼 깔렸다.

나는 정말 괜찮아지고 싶었다.
그의 응원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이 점점 흐려지는 게 아쉬웠다.
내가 잊는 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씩 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사라지는 그림자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붙잡아도 손바닥에 남는 건 허공뿐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감정을 느낀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던 시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체불’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마음을 가리고,
나는 나를 돌보지 못했고 그 사람마저 아프게 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 사람이 떠난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그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단단했다면
조금만 더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봤더라면
지금은 다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이제는 놓아줘야 할 때라는 걸 안다.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도.
그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조금씩 마음에 새긴다.
놓아 보내는 일도 사랑이었다는 걸.
그 사람이 내게 남긴 온기와 말들이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있던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 사람을 보내는 연습을 하며 나를 다시 꺼내는 연습도 서서히 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고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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